설교요약

기쁨으로 순종하라(4)_순종을 배워라(히 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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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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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으로 순종하라(4)

순종을 배워라(히 5:8-10)


그리스도의 탁월하심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논증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는 천사보다 탁월하며, 모세보다 탁월하며, 아론의 대제사장직보다 탁월하시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친히 희생제물이 되신 것은 구약시대에 드렸던 모든 희생제물보다 탁월한 것이며, 그리스도를 통해 세워진 새 언약은 옛 언약보다 탁월하며, 그리스도의 몸으로 친히 세우신 성전은 옛 성전보다 탁월하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을 논쟁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탁월함을 증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그 가운데에서도 대제사장직의 탁월함에 대해서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탁월하고 또 가장 영광스럽고 거룩하고 존귀한 직분입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아주 탁월한 존재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앞에 모든 백성들을 대신하여 나아가며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5장은 이와 같은 대제사장직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대제사장은 사람 가운데에서 선택되었습니다(1절).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셨으므로 존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선택받아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직을 감당하게 된 것이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그러나 그 영광은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백성들을 위하여 제사를 드릴 때 백성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하여서도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감당함으로 존귀한 존재가 되었지만, 그러나 그 존귀와 영광은 자기에게 속한 것이 아니며 자기 스스로 취한 것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아론의 후손들이 갖는 대제사장직의 한계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은 비교할 수 없이 탁월한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일을 감당하셨다는 것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5절). 아론의 제사장직은 아론의 혈통을 따라 이어지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아론의 혈통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유다 지파의 인물입니다.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었습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 당대에 하나님의 제사장 일을 했던 분입니다. 그는 왕으로서 제사장의 일을 감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멜기세덱처럼 아론의 후손이 아니면서도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경건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이렇게 탁월하신 분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구속사역을 감당하셨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7절 말씀은 그리스도의 경건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저는 처음 이 성경을 읽었을 때에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하신다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가르침 받은 바로는 하나님 앞에 눈물로 통회하며 부르짖으면 응답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그 생각이 성경의 말씀을 잘못 읽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런데 빼먹은 것이 있습니다.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입니다. 그리스도의 기도는 심한 통곡과 눈물 때문에 응답을 받은 것이 아니라 경건하심 때문에 응답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심한 통곡과 눈물이 기도 응답의 길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경건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태도입니다. 경건에는 마음의 태도가 있고 행실의 태도가 있습니다. 참된 경건을 위해서는 마음의 태도와 행실의 태도가 확실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기도를 경건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외적인 것일 뿐 입니다. 먼저 마음의 태도가 준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마음이 준비되지 않으면 이는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형식만 있는 것입니다. 심한 통곡과 눈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심한 통곡과 눈물이 나오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경우에는 자신의 삶 때문에 서러움이 북받쳐서 눈물을 흘리고 부르짖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진정한 마음의 태도가 없이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마음의 태도가 바르지 않으면서도 부르짖을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경건이 없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응답받는 기도는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하나님 앞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응답은 무엇 때문에 온 것입니까? 경건하심 때문에 온 것입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경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그 모든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그리스도는 경건 때문에 그리스도의 기도는 능력 있는 기도였습니다.


순종을 배우신 그리스도

8절에는 굉장히 놀라운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그리스도께서 순종을 배우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순종을 배워 순종하는 분이 되셨고, 그리하여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들을 진정으로 구원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순종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순종하는 분이 되셨다는 것은 순종이 얼마나 가치 있고 영광스러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순종은 정말 탁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신앙에서 순종은 정말 가장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순종을 통하여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순종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어보세요. 그러면 성경이 순종을 가르치는 책이라는 것과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들을 통하여 큰 일을 이루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자들을 통해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순종할 때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는다면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순종할 때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이기기 위하여 정말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 교회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순종은 성품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은 순종은 배우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순종은 성품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보면 고분고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분고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종을 성품이나 성격에 해당하는 것처럼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순종은 성품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을 체험하고 난 다음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던 사람인데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신 후에 그다음부터 얼마나 순종하며 사는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변화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하나님을 제대로 배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 하나님을 이익의 재료가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순종을 배운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순종을 위해 베워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왜 순종하지 못합니까? 배우지 못해서입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엄청난 복

성경을 보면 우리에게 순종하라 하고 말씀하신 대상들이 있습니다. 권세자에게 순복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권세자를 통해서 이루실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권세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은 이 땅의 안녕과 질서입니다. 또한 성경은 네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유는 생명의 근원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부모 공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생명을 주신 하나님, 생명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공경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여러분은 목사에게 순종해야 할까요?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진리의 영광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들 속에서 무엇을 먼저 깨달아야 할까요? 우리에게는 큰 권세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목사도 자기 위에 권세자가 있음을 알지 못하면 잘 못 됩니다. 부모도 자기 위에 권세자가 있음을 알지 못하면 잘 못 행하게 됩니다. 왕도 자기 위에 왕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잘 못 됩니다. 우리는 모든 권세의 최종 권위가 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것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순종의 성품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품에 따르는 순종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가? 하나님의 권세를 아는가? 그 권세 앞에서 진정으로 겸손해졌는가? 그것이 우리 속에 확실하게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에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을 가르치는 것이 “목사 말에 무조건 따라라”하는 식의 인식을 주면서 순종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상황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더불어 행위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행위 언약은 순종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담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시며 권세자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순종을 배웠을 때 그에게 영광스러운 것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원한 생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보다 더 큰, 이 세상 모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더 나아가서 하늘에 있는 것까지 하나님의 기업으로 상속받게 되는 영광스러운 축복을 받게 될 것이었습니다. 아담이 순종을 배우고 순종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예비하신 것, 약속하신 것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순종으로 시대를 섬기는 교회

오늘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9절 , “그리스도가 순종을 통해 온전하게 되셨은 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즉 그리스도인을 다른 말로 부른다면 순종하는 자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대에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권세 앞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여 이 시대를 새롭게 하고 시대를 섬기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울러서 순종하는 자를 통해서 큰 일을 이루시며 순종하는 자에게 큰 복을 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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