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으로 순종하라(9)_목회자에게 순종하라(히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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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4-23본문
기쁨으로 순종하라(9)
목회자에게 순종하라(히 13:17)
사도가 교회에 자신을 소개하는 표현의 의도
본 설교 시리즈에서 기쁨으로 순종해야 하는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복된 길이지만, 하나님은 그 순종을 위하여 우리에게 여러 가지 훈련을 연습할 수 있는 훈련장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중 하나는 부모님이었고, 다른 하나는 목회자입니다. 목회자는 교회를 말씀으로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역자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 서신에서 발견하는 한 가지 인상적인 사실은 수신인들에게 사도 바울이 자기를 소개하는 장면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자신이 편지를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편지를 쓰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써놓았겠죠. 그러나 거기에 발신자를 표현하는 용어들이 특별합니다. 먼저는 자기 이름을 씁니다. 그다음에는 자신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로마서 1장 1절을 보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복음을 위하여 택함을 받은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는 "바울,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왜 이렇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들어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있을까요? 자기의 권세를 자랑하기 위해서일까요? 또는 성도들에게 자기의 이 위치를 주입하기 위해서일까요? 이러한 표현은 사도가 자기의 사명을 인식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의도는 성도들이 사도 바울에 대하여 바른 이해를 가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받아 세움 받은 사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나를 섬겨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도들이 사도의 위치와 그의 사명, 그의 역할 등을 제대로 이해해야 그가 주는 교훈들을 제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의 교훈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성도들만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성도의 손해는 교회의 손해입니다. 교회의 손해는 사탄에게 유익될 뿐입니다. 성도들이 목회자에 대해 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그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주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는 데 필수적인 사실인 것입니다. 목회자의 위치는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할은 초대교회 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변함없이,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까지, 교회가 지상에 존재하는 한 교회 안에 항상 있어야 하는 역할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특성 때문에 목회자와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성도들이 목회자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과 교회의 삶에서 목회자와의 관계를 잘 이루어가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목회자와의 관계 1. 순종하라
그러면 목회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본문 히브리서 13장 17절 말씀에서는 “순종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리고 그 순종과 복종은 목회자가 기쁘게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게 하는 채찍질과 같은 것입니다. 성도들이 열심히 순종하면 목회자는 기쁘게 더 열심히 하게 돼 있습니다. 17절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맡겨진 일을 즐겁게 감당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근심으로 하게 한다는 것은 어떤 성도는 말씀을 가르쳐도 아무런 변화가 없고,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언제나 교회 일을 늘 삐딱하게 바라보고 생각하여 근심하고 염려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목사도 그런 생각이 오래되면 마음에 병이 듭니다. 마음에 병이 들면 마음 상태가 굉장히 거칠게 변합니다. 마음이 거칠어지면 입이 거칠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것들을 굉장히 경계합니다. 행여 누구한테라도 여과되지 않은 말들이 불쑥불쑥 나오는 경우들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가 그런 말들이 나오면 굉장히 마음이 답답합니다.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목회자의 사역은 하나님 앞에서 회계하는 삶입니다. 회계는 회계, 즉 장부를 정리해서 결산 도장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목회자는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의 믿음의 삶에 대하여 결산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목회자가 우리를 대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영적으로 늘 책임의식을 가지고 성도들이 해야 되는 부분인데도 목회자는 “제가 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대로 못 가르쳐서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늘 그렇게 자기의 책임으로 항상 말씀을 드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도들이 갚아야 할 것이 있다면 목회자가 갚으려고 나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목회자가 우리와 하나라고 하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17절 끝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여기 “그렇지 않으면”이라는 말은 순종하고 복종하라에 걸리는 것입니다.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조금 전에 “목회자와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는 말씀은 바로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목회자와의 관계 2.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둘째 목회자와의 좋은 관계를 위해 좋은 것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6절 말씀을 보면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선배 신앙인들에게 많이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려운 시절이지만 집에 맛있는 것이 들어오면 “아이고 목사님 드려야 되는데” 하면서 목사님을 먼저 생각하고, 좋은 것이 있으면 “아이고 이거 목사님도 …” 하면서 목사님을 떠올렸습니다. 무언가 좋은 것을 누릴 때는 “목사님도 누리지 못하신 건데 내가 누릴 수 없다”고 했다고 합니다. 요새도 어느 곳에서는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우리는 옛날 이야기기로 듣는 것들이지요. 그런데 이 이야기들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는 말씀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종종 제가 목양실에서 말씀 준비를 위해서, 또는 묵상을 위해서 책장에서 책을 꺼내 책을 꺼내 들쳐 보곤 하는데, 책 표지를 넘기면 인쇄 안 된 첫 페이지에 가끔 날짜와 이름이 적혀 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한테 그 책을 선물한 분들의 이름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책을 선물하신 경우 제가 그 책에 날짜와 이름을 적어놓기 때문입니다. 제 서가에는 그런 책들이 많습니다. 제 서가에는 제가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 청년부 사역을 마쳤을 때 청년들이 선물한 책이 있습니다. 그 책 앞에는 청년들 수십 명의 인사말이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펼쳐 그 글을 읽으면 마음에 감동이 밀려옵니다. 그리고 그 청년들과 함께 했었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 사람들과 함께 했었던 그 시대를 축복하시고, 그 시대의 여파로 그다음 시대가 이들로 인하여 빛나는 시대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목회자와의 관계 3. 사역을 후원하라
셋째 목회자의 사역을 후원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목회자의 사역과 삶을 후원하는 문제에 대해서 교훈할 때 했던 말씀입니다. 사도 바을은 “내가 여러분에게 받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뭔가를 더 얻으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게 모든 것이 다 있고, 나는 모든 것이 풍족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유익을 위하여 내가 이 말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목회자와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울이 더 먹고 싶어서, 더 잘 입고 싶어서, 더 누리고 싶어서, 성도들에게 그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문제는 성도들의 영혼의 유익을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를 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그리고 빌립보에서 떠나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너희가 나의 쓸 것을 두 번 보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바울의 선교 사역에 동참을 했습니다. 심지어는 그 교회에서 에바브로디도까지 파송해서 바울의 선교 사역을 돕게 했던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빌립보 교회는 어린 교회였지만 목회자를 사랑하고 그의 사역을 적극적으로 후원했었던 교회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들의 이와 같은 헌신에 대하여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영광의 하나님께서 너희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고 축복의 말씀을 했던 것입니다.
목회자와의 관계 4. 목회자의 생활을 돌아보라
넷째 목회자의 생활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는 여러 고비가 있습니다. 건강 문제도 있고, 자녀들의 여러 가지 문제도 있고, 오르락 내리락하는 고비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삶에도 그런 고비가 있지만 목회자의 삶에도 그런 고비가 있습니다. 그럴 때 성도들이 교회에서 생활비 정해준 거 꼬박꼬박 주고 있으니 하면서 목회자를 월급쟁이 취급하면 안 됩니다. 목회자의 삶과 그의 사역을 위하여 필요한 부분들을 잘 살피고 이런 것들을 지원할 수 있는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삶이기 때문에 목회자에게도 어떤 고비들이 있고 그때마다 필요한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목회자는 아무 데도 기댈 데가 없습니다. 제가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려고 은행을 갔습니다. 그런데 담보제공 능력이 없으니까 재산세 5만원 이상 내는 사람을 보증인으로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디 가서 보증인을 데려오겠습니까? 성도들에게 말씀을 못 드리겠더라고요.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는 하나님의 축복
오늘 우리는 목회자의 관계는 우리를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 됩니다. 이것을 우리의 마음속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놀라운 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이겨나가기 위해 목회자와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나누고 슬픈 일이 있으면 또 함께 나누면서 우리가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이겨내야 합니다. 서로 간에 마음을 닫아 걸고. 마치 우리가 가진 정치적 견해처럼 어느 당을 지지하면 끝까지,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관계라면 그것은 저주받은 것입니다. 그런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 성도는 성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생각을 모두 버리고, 주님께서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를 진정으로 복된 관계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을 믿고 이 시대를 함께 이겨나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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