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시대의 격랑속에서 진리의 인도하심을 따르라(3)_진리의 인도하심따라 내가 여기 서 있나이다(요 16: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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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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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격랑속에서 진리의 인도하심을 따르라(3)

진리의 인도하심따라 내가 여기 서 있나이다(요 16:12-13)


루터가 서 있던 자리는 어디일까? 

루터는 신성 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소환을 받고 제국 의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종교개혁 역사탐방 시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제국의회가 열린 곳은 대성당이었습니다. 저는 본당 통로 한가운데 서서 루터의 최후 진술을 떠올렸습니다. “내가 여기 서 있나이다.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 아멘.” 루터가 이 말을 했을 때 그는 어디에 서 있었을까?  황제는 어디에 있었으며, 로마 교회 대표단과 영주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여러 가지로 상상을 해봤습니다. 같이 갔던 목사님과 루터가 서 있던 자리에 서서 기념사진을 한번 찍었으면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까 루터가 서 있던 곳은 작은 홀이었습니다. 전에 읽었는데도 막상 현장에서는 본당으로 착각했으니 혼자 속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루터가 보름스에서 황제 앞에 나아갔던 그 방은 아마도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는 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루터가 ‘내가 여기 서 있나이다’라고 했을 때 그 말은 물리적 공간으로서 자기가 서 있는 자리라기보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담은 역사적인 자리를 의미했을 것입니다. 그 자리는 역사적인 현장으로서 시대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오게 된 바로 그 자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루터가 황제 앞에서 진술했었던 최후 진술을 읽어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인용한 성경 말씀에 정복당해 있고,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속박당해 있습니다. 성경의 증언에 의해, 또는 명백한 논증에 의해 논박되지 않는 한, 나는 어떤 것도 철회할 수 없고,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내가 여기 서 있나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그는 성경 말씀에 정복당해 있었고, 그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속박당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자리까지 왔고, 당연히 성경의 증언에 의해, 또는 명백한 논증에 의해 논박당하지 않는 한, 그는 그 어떤 것도 철회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루터가 서 있던 작은 방

루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 교회 대학 정문에 95개조로 되어 있는 논문 하나를 붙여놓습니다. 이 논문은 인쇄업자에게 바로 넘어갔고, 인쇄업자는 그것을 인쇄해서 유럽 전역에 퍼뜨리게 되었습니다. 직전 시대에 구텐베르그가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하고 그로 인해 대량 인쇄가 가능하게 되자 종교개혁 시대에 바로 그것이 활용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 유럽으로 루터의 논문이 퍼지게 되었는데, 그 논문의 파장은 굉장히 컸습니다. 로마 교회는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게 되었고 루터와 이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게 됩니다. 몇 차례의 논쟁으로도 결국 루터를 설득할 수 없게 되자 로마 교황은 루터에게 파문장을 보냈습니다. 루터는 이 파문장을 찢어버립니다. 그래도 루터를 설득해야 된다는 주장들이 있었고 이번에는 로마 교황이 나서지 않고 황제가 나섰습니다. 그리하여 신성 로마제국 황제였던 카를 5세가 루터를 보름스로 소환했습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에서 보름스까지 보름 동안에 걸쳐 마차를 타고 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성당에 와서 한 없이 기다리다가 대기한 지 두 시간 만에 작은 방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황제를 비롯해서 고위 성직자와 귀족들, 영주들이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앞에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그 위에는 루터가 썼던 책과 논문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루터를 심문하는 일을 주재하던 추기경이 “이 책과 논문들이 네가 쓴 것이 맞냐?”고 물었습니다. 루터와 함께 했던 사람이 루터의 대변인이 되어 “이것이 루터가 쓴 글인지 확인해도 되겠는가?”하고 묻습니다. “확인해라.” 그래서 그가 책과 논문을 일일이 확인하고 “루터가 쓴 것이 맞다”고 진술합니다. 그때 추기경이 황제의 이름으로 “이 글들을 철회하라”고 선언했습니다. 루터는 “내일 답변하겠습니다.”하고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루터가 다시 그곳에 갔더니 전날과 똑같이 2시간을 기다리게 하고 루터를 불러들였습니다. 루터는 황제와 영주와 또 고위 성직자들 앞에서 최후 진술을 했습니다. “나는 내가 인용한 성경 말씀에 정복당해 있고,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속박당해 있습니다. 성경의 증언에 의해, 또는 명백한 논증에 의해 논박되지 않는 한 나는 어떤 것도 철회할 수 없고,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내가 여기 서 있나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그리고는 밖으로 나오자 성당 앞에는 루터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루터는 이 사람들에게 간단하게 연설을 했습니다. 그 연설을 했다는 자리는 오늘날 조그마한 공원으로 형성돼 있고 루터가 섰던 자리에는 루터의 신발 조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오기까지

“내가 여기 서 있나이다.” 루터가 서 있던 “여기”는 도대체 어디일까요? 저는 계속해서 묵상하다가 “여기”는 진리의 역사(役事)가 루터의 마음에, 그의 양심에 역사하여, 그 양심이 이끄는 대로 오게 된 자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인용한 성경 말씀에 정복당해 있고,”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복당했습니다. 그의 정신세계, 그의 사고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정복당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매이게 된 것입니다. 자기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했고, 그 양심은 그것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 진리를 깨닫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얼마나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그가 에어푸르트 대학을 다닐 때 그는 법학을 전공하던 법학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법학도가 변화되었습니다. 루터가 변화된 계기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친한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현장에서 루터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그는 수도사가 되기로 서약을 합니다. 그런데 루터는 당시 로마 가톨릭의 미신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가 배운 하나님은 진노하신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라고 하신 말씀을 읽을 때, 그는 하나님을 엄위로우신 하나님, 두려우신 하나님, 의로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했고, 복음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의에 대해 읽을 때마다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고, 나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하여 그는 로마 교회가 가르치는 가지가지 관행들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수도원에 들어가면 수도원에서 시키는 과제들이 있습니다. 금식과 고행과 노동과 수행 등등 별의별 일들을 다 했습니다.


진리에 사로잡혀 오게 되었다

루터는 후에 로마 카톨릭 사람들에게 공격을 많이 받았지만 수도사 생활을 가지고는 아무도 그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수도사의 의로는 그를 책잡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그가 속한 어거스틴 수도원 대표로 로마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에 가서도 열심히 수행을 했습니다. 로마에는 천국의 계단이 있고, 그 계단을 무릎을 올라가면 은혜를 받는다 해서 무릎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래도 마음의 평화는 없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죄에 짓눌렸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면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언제 해결했을까요? 루터는 에어푸르트 대학 과정을 마치고 비텐베르크 대학에 와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성경 과목을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강의를 위해 시편과 갈라디아와 로마서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가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로마서 1장 17절의 하나님의 의는 우리를 심판하는 의가 아니라 죄인을 의롭게 하는 의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루터는 로마 교회에서 배웠던 모든 미신들을 벗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진리의 말씀을 대함으로 진정으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깨닫기 전에는 그의 정신세계, 그의 양심, 그의 삶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언제 하나님이 번개를 쳐서 나를 죽일지 모른다, 혹은 지금 사는 동안 번갯불 심판을 안 당해도 나중에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수 있다, 그 두려움 때문에 벌벌 떨던 사람이 드디어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는 드디어 말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기쁨, 그 즐거움, 그 감격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을 새롭게 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을 주장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삶을 인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다 보니 로마 교회가 가르치고 행하는 가지가지 미신과 잘못된 관행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황제의 소환도 당하게 되고, 그 소환을 받아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으면 그 자리까지 와야 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머릿속에 들어오고, 그의 사고를 점령하고, 그의 양심을 붙들지 않았더라면 그가 그 자리에 와야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교황이 그의 주장을 철회하라고 명령했을 때 아마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하여 결국 이 최후통첩 자리에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을 인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양심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인용한 성경 말씀에 정복당해 있고,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속박당해 있습니다.” 그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성령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16장 12절, 13절 말씀은 진리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 보면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12절을 보면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지금은 감당치 못할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지금은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진리를 깨닫는 자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의 마음속에 진리가 밝히 드러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인도하심”입니다. 알지 못하던 진리, 깨닫지 못하던 진리, 아직은 감히 그에 미치지 못했던 나의 믿음이나 나의 지성이 다가가지 못했던 그런 곳까지도 성령이 인도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에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 즉 진리가 그 마음속에 깨달아지도록 모든 진리 가운데로 하나하나 인도하시는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마음은 그의 지성, 그의 양심입니다. 그리고 그의 지성과 양심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하나님의 진리로 인한 기쁨과 사랑으로 충만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것이 속박당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성령은 진리로 우리를 속박하신다

진리에 속박당하고 진리로 인도받는 사람은 진리에 대한 사랑과 기쁨이 있습니다. 넘쳐나는 감격이 있습니다. 그는 진리를 붙들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참된 예배 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루터는 그렇게 인도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황제가 소환한 자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이 그를 말렸습니다. “가면 안 된다. 가면 안 된다. 100년 전에 얀 후스가 황제의 소환을 받고 화형당한 것을 기억하라.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안된다”고 말렸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그때 그는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그때 그는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진리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진리의 이끄심을 따라갔더니 “내가 여기 서 있나이다” 했는 그 자리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우리도 진리의 인도하심을 받아 “내가 여기 서 있나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순간들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진리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할 것인지, 우리는 그때 진리의 이끄심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 것인지, 대답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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