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기쁨으로 순종하라(7)_사랑을 배우라(요 14: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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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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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으로 순종하라(7)

사랑을 배우라(요 14:21-24)


순종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서 저녁 식사와 성찬예식을 거행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행하신 '다락방 강설’의 일부입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주신 것은 이제 식사를 마치고 나면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실 것이고, 또 그날 밤에 예수님은 대제사장이 보낸 사람들에게 붙잡혀 밤새도록 이곳저곳으로 끌려다니며 모욕과 천대를 받으시다가, 다음 날 아침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락방 강설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차분하게 교훈하실 수 있는 마지막 순간, 마지막 교훈의 말씀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오는 동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것에 대하여 세 차례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때마다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루살렘에 와서 이 결정적인 밤에 그들의 두려움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믿고 아버지를 믿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고 말씀하시면서 약속의 말씀, 위로의 말씀, 당부의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놀라운 은혜를 더하실 것입니다. 성령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그들의 삶 속에 주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들어주실 것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약속으로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씀 가운데 그들에게 특별히 당부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과 순종이었습니다. 믿음과 순종,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주님은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다음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보면 순종을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순종의 교훈을 통해 순종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복음적 순종과 율법적 순종

14장 15절 말씀에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21절 이하에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계명,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23절에서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24절에서는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 청교도들은 순종에 대하여 가르칠 때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서 가르쳤습니다. 첫째는 복음적 순종이며, 두 번째는 율법적 순종이었습니다. 복음적 순종은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참된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적 순종은 자신의 죄와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하여 어쩔 수 없이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율법적 순종에 익숙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간의 상황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벌을 주겠다 하면 법을 지킵니다. 형식상 지키기는 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의미가 마음속에 없습니다. 그리고 명령을 주신 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마음속에 없습니다. 즉 명령을 내리신 분에 대한 사랑은 없고, 단지 명령을 어겼을 때 자신이 겪게 될 불편함과 손해, 고통과 괴로움, 이런 것들이 싫으니까 이것을 지키는 흉내를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형식적인 순종입니다. 또 율법적 순종에는 그것을 지켰을 때 약속된 유익이 때문에 순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포상금의 약속이 있을 때는 열심히 합니다. 자신이 얻게 될 유익과 보상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더욱더 마음을 기울여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상이 작으면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적 순종입니다. 내가 얻게 될 유익 때문에 혹은 내가 받게 될 불이익 때문에 순종하는 모습, 이것이 바로 형식적인 율법적 순종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착각과 오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순종을 요구하시는가? 복음적 순종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순종이 바로 그것입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시내 산 언약을 떠올리게 하는 말씀입니다. 시내산 언약은 계명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명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명을 지켰는데도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게 이렇게 따집니다. ‘하나님, 우리가 계명을 지켰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계명을 지켰는데도 이럴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깨닫지 못했던 것, 그들이 마음에 두지 않았던 것이 있었습니다. 계명을 지킬 때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원리를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계명은 지켰는데 율법적 순종이 되었고, 자기들에게 유익된 것은 지키지만 유익되지 않는 것은 지키지 않는, 자기들에게 좋은 것은 삼키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뱉어버리는 선택적 순종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체면과 자기들이 행한 일들이 남들 앞에 대번에 표가 날 일들은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문제는 그들이 진정으로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왜 그들은 계명을 진정으로 지키지 못했을까요?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진정으로 계명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순종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사랑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신명기서 6장 4절 말씀은 이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6:4 이하의 말씀은 '이스라엘아 들으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가르치셨던 내용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서기관이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당신은 정말 율법에 정통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면 율법의 첫째 되는 계명이 무엇입니까?'라고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율법 중에 첫째 되는 계명은 이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아 들으라. 신명기서 6장 4절 이하의 말씀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본문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 산 언약을 지키는 참된 원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원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 계명을 진심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이 참된 순종에 이르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이 일에서 실패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됨, 그 지상의 나라를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과거의 이스라엘 왕국, 다윗의 왕국을 회복할 수 있을 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메시아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다시 지상에 가시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신약시대가 교회 시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버림을 받음

왜 이와 같은 경륜의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계명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무효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 덕목이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저는 순종이 교회 안에서도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 교회를 다녀보면 교회마다 독특한 분위기들이 있습니다. 어느 교회를 가면 성도들이 참 밝습니다. 그 교회에 들어가면 성도들이 낯선 사람에게도 굉장히 밝은 미소로 인사를 잘합니다. 학생들도 아주 밝게 미소를 띠고 인사를 합니다. 반면 어느 교회를 가면 누가 오거나 말거나 표정 없이 대하고, 자기들끼리만 인사를 나눕니다. 또 어느 교회 사무실에 들어가서 무언가 물어보면 사무실 직원이 굉장히 친절합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게 되었을까요? 제가 어느 날 순간적으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아주 밝고 기쁨이 넘치고, 또 외부인에 대해서도 아주 친절하게 대하는 교회는 목사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은혜를 받는 특징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은혜를 받는 교회의 성도들은 표정과 행동이 다릅니다. 교회와 목사님에게 불평, 불만만 있는 성도들, 그러한 교회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누가 와서 무얼 물어도 친절하지 않습니다. 교회 일을 할 때도 목사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일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목사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교회 생활하는 것과 불평, 불만이 있는 사람이 교회 생활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목사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은혜를 받는 성도는 목사님의 지도와 목회 정책에 순종을 합니다. 그러나 순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교회 목사님의 목회 정책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남의 교회만 이야기합니다. 남의 교회가 뭘 하든 기본적으로 우리 교회에서 무엇이 이루어져야 할까요? 목사님의 지도와 목회 정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남의 교회가 무엇을 하는지 그런 이야기만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분들은 굉장히 똑똑한 분들이겠죠. 그러나 순종하지는 않는 분입니다. “목사님이 하나님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목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부모님이 하나님이 아니지만,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은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입니다. 마찬가지로 목사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잘못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순종하라

오늘 요한복음 14장 24절 하반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나를 사랑하는 자가 내 계명을 지킨다라고 이야기하면서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이렇게 바로 일치시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은 엄연히 다른 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과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동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는 이미 이것이 신학적으로 정립이 되어, 이미 이런 교훈 속에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기 “내 말”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을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그 시대의 제자들이나 그 시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동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4절 처음부터 보면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듯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복을 약속하셨을 때 그 언약의 복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 계명을 진심으로 순종하는 사람들과 맺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진심으로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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