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예배는 시대의 어둠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1)_하나님은 참 예배자를 찾으신다(요 4:23-24)
페이지 정보
작성일2024-05-04본문
참 예배는 시대의 어둠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1)
하나님은 참 예배자를 찾으신다(요 4:23-24)
참 예배는 우리 시대의 과제
영광스러운 예배는 지금 우리 시대의 과제가 되어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거쳐 오면서 이 시대는 예배에 있어서 역사상 가장 어두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물론 예배의 어두움의 문제는 우리 시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아담 이후로 지금까지 예배의 문제는 참으로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통해 역사를 보면 참 예배와 거짓 예배 사이의 전쟁이 역사의 특징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 이 시대에 진행되고 있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예배의 문제는 오늘 우리의 사명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예배는 이 시대를 이기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리고 참 예배자가 되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예배에 대한 갈망이 그 어느 때보다 아주 강렬한 시대입니다. 예배가 위축되고, 무너져가고, 예배자들이 교회를 떠나가는 시대인데 도리어 예배에 대한 갈망은 더 커진 시대,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참 예배는 진정으로 우리가 직면한 역사 현실이면서 사명이기도 하고, 방황하는 영혼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영혼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참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라면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높이 들어 사용하시는 교회가 될 것이며, 예배의 갈망을 가진 영혼들이 찾아오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즉 예배가 예배를 부르고 예배가 예배자를 부르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힘과 능력을 얻으며 성도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길은 참 예배에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 교회가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참 예배자에 대한 교훈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본문입니다. 이 본문은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할 것인가, 예배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참된 예배자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방법을 찾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수 있을까? 물론 굉장히 좋은 고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예배의 장소나 방법이 아니라 참된 예배자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가 갈릴리로 돌아가는 과정에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도중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세겜성 근처 수가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 마을 밖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물가에 앉아 계실 때 마침 물을 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대화중에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에 대하여 특별한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선지자일 것이라는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선지자라면 당연히 자기가 평소에 품고 있던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으로 대답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예수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 장소라고 주장을 하고, 사마리아인들은 세겜 땅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참된 예배 처소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어디가 참된 예배 처소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장소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저 산에서도 말고 아버지께 예배하는 때가 이르리라.” 그리고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즉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시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과거에 우리가 사용하던 개역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신령과 진정으로”라고 번역했습니다. “신령과 진정”은 예배자 속에 있는 예배자의 어떤 특성으로 생각하게 하는, 참 예배를 예배자 속에서 찾게 하는 번역입니다. 본문은 예배자 속에 있는 어떤 특성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예배의 특성을 말하는 것인가?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은 그동안에 제기되었던 문제들을 수용해서 이 부분을 “신령과 진정으로”에서 “영과 진리로”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예배의 새 시대에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본문의 직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때가 오고 있고, 지금이다. 그런데 그때는 참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하는 때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예배하는 그러한 자들을 찾고 계신다.” 직역은 단어 순서대로 했습니다만 이것을 조금 정리하면 “참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하는 때가 오고 있고 그때는 바로 지금이다”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참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하는 때가 오고 있다. 즉 시대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금까지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대하여 사마리아인들은 자존심 싸움을 하듯 세겜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시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예배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참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하는 때가 오고 있고 그때는 바로 지금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지금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새 시대의 참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지금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우리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때로부터 지금까지가 하나의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시대이며, 이 시대는 하나님께서 참된 예배자를 찾고 계시는 시대인 것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예배의 새 시대는 계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23절 말씀을 보면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되게 예배하는”에서 “참되게”는 부사이고, “예배하는”은 동사입니다. 그런데 원문에는 이것이 형용사와 명사로 되어 있습니다. 즉 “참 예배자들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참 예배자들은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오나니”라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참된 예배자들이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때가 오고 있고, 그것이 지금 바로 지금이라는 말씀입니다. “오고 있다”는 말은 진행형입니다. 그다음에는 “바로 지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예배의 새 시대가 임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심과 더불어 예배의 새 시대가 임하고 있습니다. 지금 예배의 새 시대가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예배의 새 시대에 참 예배자들은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참 예배자들을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께 합치하는 예배
왜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할까요? 24절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형상으로 묘사하는 모든 것들은 우상을 만드는 일이 됩니다. 돌이나 나무나 철로나 그림으로나 하나님을 묘사하면 안 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의 상상으로나, 혹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이 세계의 어떤 물질, 어떤 형상을 가지고는 감히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할 때 예배의 본질도 영이신 하나님과 합치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영이시라면 예배 방식도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것에 합치해야 할 것입니다. 그 합치점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영과 진리입니다. 영과 진리는 상당히 논란이 많은 용어입니다. 왜냐하면 영이라고 하는 말이 성령을 가리키는 것인지, 인간의 영을 가리키는 것인지 분명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영을 성령으로 이해해야 할지, 아니면 인간의 영으로 이해해야 할지, 아니면 인간의 영에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이해해야 할지 난감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리하여 이에 대해 수많은 해석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과 진리는 도대체 무엇일까? 여기에 정관사가 붙어 있다면 성령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정관사가 붙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성령으로 보아야 할 것이냐라는 의문이 늘 제기되는 것입니다. 또 진리로 번역되어 있는 말에도 역시 정관사가 없습니다. 여기에 정관사를 붙이면 ‘특정의, 지정된 진리’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정관사가 없으므로 진리 전부를 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과 진리로”는 성령께서 진리를 가지고 예배자의 영에 역사하시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당신은 참 예배자인가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예배에 대한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참 예배자들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한 여인이 드라크마 동전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여인은 동전을 찾으려고 빗자루를 가지고 쓸고 쓸고 또 쓸어서 마침내 드라크마를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참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캄캄한 방에서 빗자루 들고 쓸고 계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본질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한 사람 한 사람, 그러면서도 일시에,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참 예배자를 찾으실 때 시간이 걸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1대 1로 만나고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참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지금 이 시대의 참 예배자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도전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참 예배자로 발견될 수 있는가? 두 번째로 하나님은 참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게 하십니다. 과거의 예배는 무엇이었을까요?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배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물로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 이제는 더 이상 재물로 드리는 예배는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운명하시는 순간에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바로 휘장이 찢어짐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하나님께 나아갈 새롭고 살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들은 하나님은 불 가운데에 계신 엄위로우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고 하여 하나님께 방자하게 굴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셨다고 하여 하나님 앞에서 장난치듯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소멸하는 불처럼 엄위로우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예배자로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가져야 하는 마음입니다.
더이상 피 흘리는 제물이 필요 없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것은 제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영과 진리의 예배입니다. 성령께서 진리를 가지고 우리의 영혼에 역사하시는 것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진리와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성령은 진리를 가지고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진리를 우리에게 전달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성경 계시를 우리에게 전달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성경 계시가 우리의 마음속에서 깨달아지도록, 그리하여 우리의 영혼이 진리로 새로워지도록 하십니다. 즉 우리의 예배는 성령께서 진리를 사용하여 우리의 영혼에 역사하는 예배인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어린 양을 잡아 피를 흘리고 그 고기를 불살라 연기를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예배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은 성령께서 진리를 사용해서 우리의 영혼에 역사하시고, 그리하여 우리의 영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영이신 하나님을 대면하게 하는 예배인 것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예배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 시대가 이미 우리에게 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참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참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십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과거의 제사장은 날마다 양 잡는 일을 하는 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백정이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도 피 흘리는 제물을 가져올 필요가 없습니다. 참 예배자는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