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참 예배는 시대의 어둠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3)_참 예배와 거짓 예배의 전쟁②(창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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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5-22

본문

참 예배는 시대의 어둠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3)

참 예배와 거짓 예배의 전쟁②(창 6:1-8)


노아 시대의 영적 타락 

본문 말씀은 노아 시대의 절망적인 영적 현실과 그들의 영적 타락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셨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노아 시대의 영적 타락은 한 가지 현상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 이런 현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리고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본문의 “120년”을 인간의 수명을 말씀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창세기 5장을 보면 이전에는 사람들의 수명이 지금의 10배 이상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수명이 120세로 이제 줄어든다는 것을 말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은 인간의 평균 수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앞으로 남아 있는 시대에 대한 말씀입니다. 즉 이 시대가 앞으로 12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120년 동안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120년 후에는 홍수 심판으로 모두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자기 아내로 삼는 일을 영적 타락으로 보시고, 그리고 그것이 극에 달한 현상을 보시고 심판하시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불경건한 계보의 자손의 성공과 번영의 영향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로 해석하고, 천사가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아 자녀를 낳았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영적인 존재가 육체를 가진 사람과 결혼해서 자녀를 낳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천사들이 사람과 결혼해서 내피림이라고 하는 DNA가 탁월한 인간들을 낳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천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과 결혼하고 자녀를 낳을 수 없습니다. 또 다른 해석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경건한 계보의 자손들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딸들은 불경건한 계보의 자손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즉 경건한 계보의 자손들이 불경건한 계보의 자손들과 결혼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경건한 계보의 자손들의 배우자 선택 기준이 무너졌습니다.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상대방의 어떤 외모입니까? 그가 가지고 있는 스펙입니까? 아니면 그의 마음속에 있는 믿음입니까? 노아의 시대는 그 기준이 완전히 무너진 시대였습니다. 신앙의 원리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4장 16절 이하에는 가인의 계보가 등장합니다. 가인은 에녹을 낳았고, 애녹은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는데,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습니다. 그리고 이 라멕이 2명의 아내를 얻어서 첫째 아내 야다에게서는 야발과 유발을 낳았고, 또 둘째 아내 실라에게서는 두발가인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라멕은 결혼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 마음도 매우 잘못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늘 자랑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23절) 그는 자기가 조금이라도 손해를 입으면 10배, 20배로 보복하며 살아왔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렇게 자랑했습니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그런데도 그의 자녀들은 잘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실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그 시대에 라멕의 아들들이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인물이 되었던 겁니다. 악인의 자손이 잘 되고 있었습니다. 이 일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합니다. “아 저렇게 살면 잘 되는구나.” 혹은 “저렇게 살아도 괜찮구나, 저렇게 살아도 벌 받지 않는구나”라고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에 라멕처럼 사는 풍조가 퍼지게 된 것입니다. 라멕 이후에 가인의 후손들은 점점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하등의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되었고, 나중에는 가인으로부터 내려온 잘못된 예배조차도 아예 버리는 데까지 나가게 되었습니다.


경건한 계보 속의 영적 부흥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의 후손입니다. 아벨이 자기 형 가인에게 죽은 후 아담과 하와가 다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셋입니다. 셋은 에노스를 낳았습니다. 에노스 때에 신앙적으로 크게 부흥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때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즉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예배의 부흥과 더불어 경건한 성도의 계보가 이어졌습니다. 에노스의 후손 가운데에는 에녹이라고 하는 인물이 있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살아서 하나님께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림을 받는 인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셋의 계보의 끝에 노아가 등장했습니다. 노아는 경건한 사람들의 계보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6장 9절 이하에 보면 노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의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영적으로 어두웠던 시대에 노아는 탁월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역시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예배자의 삶을 살았던 것을 의미합니다. 


시대가 변하다

그런데 경건한 사람들의 계보 속에서 신앙의 부흥이 이어지고 있는 사이에 시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경건한 백성들 가운데에도 가인의 후손들처럼 세상의 것을 추구하며 가인의 계보로 편입되어 가는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즉 경건한 족속들이 불신과 불경건의 세계에 스스로 편입되는 일들이 발생했고, 이것이 시대적인 현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7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말세에 대하여 교훈을 하시는 중에 노아의 때에 대해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노아의 때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사람들이 EDPS에 빠져 있었습니다. E는 Eating, 먹는 것입니다. D는 Drinking, 술을 마시는 것입니다. P는 Playing, 놀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S는 Sex입니다. 성적인 것들을 탐닉하는 것입니다. 옛날 노래 중에 이런 노래도 있습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이 노래는 굉장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늙으면 노는 것도 쉽지 않으니 젊을 때 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EDPS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자기의 삶을 아무리 고상하게 포장을 해도 결국은 이것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의 문제는 우리 시대의 문제

노아 시대 사람들은 먹는 데 탐닉하고 먹는 것에 대단한 가치를 두고 먹는 것을 찾아다니느라 모든 돈과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와 닮았을까요? 우리 시대입니다. 우리 시대는 먹는 거에 얼마나 큰 가치를 두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맛집을 찾아다니는데 이 일에 자기 인생을 건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것은 시대적인 현상입니다. 그다음에 Drinking, 술 먹고 취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노아 시대처럼 술 때문에 온전한 나라가 되지 못합니다. 대한제국이 멸망할 때에도 이런 사회 현상이 있었습니다. 술 먹고 주정하는 사람들로 인해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 기강 무너졌습니다. 오죽하면 교회가 술 먹지 말라고 가르쳤을까요? 그리스도인은 술을 먹어서는 않된다고 가르쳤고 지금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왜 교회가 술 먹지 말라고 법으로 정해 놓았을까요? 술 취하는 것이 사회 현상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한번 술을 먹으면 갈 데까지 가보자고 합니다. 지금 이 Drinking의 문제는 시대적 현상이 되어 있습니다. 술 취하는 것이 시대적인 현상이 되고, 그것이 가정을 망치고, 인생을 망치는 일이 된다면 당연히 금해야 하는 것입니다. P, Playing은 무엇일까요? 노는 것, 재미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노는 데, 즉 재미를 추구하는 데 빠져 있습니다. 심지어 목사님도 개그맨이 돼야 할까, 목사님이 유재석이 돼야 할까? 교회도 재미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예배도 재미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재미가 모든 것의 평가의 기준이 되는 시대, 그것이 시대 정신이 되어버린 시대,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문제입니다.


노아 시대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종말을 맞이한 것처럼

노아 시대에 대해 예수님께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오는 종말의 때는 어떤 때인가? 노아의 때와 같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노아의 때에 종말이 왔기 때문입니다. 노아 시대의 종말은 무엇 때문에 온 것입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EDPS의 탐닉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시대의 흐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흐름이 홍수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EDPS에 탐닉하는 충조가 거대한 홍수처럼 쓸고 내려가는데 전에는 안전하다고 샐각했던 집들도 이 홍수에 떠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괜찮았던 집인데 지금 쓸려내랴가는 집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배교의 물줄기에 휩쓸려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그 쓸려 내려감이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노아가 방주를 짓고 노아의 여덟 식구가 방주에 들어가 가기까지 한 명도 더해지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즉 그 쓸려 내려감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보편 현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한편으로는 방주를 지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노아 시대가 종말을 맞이한 것처럼 인자가 임할 때에도 동일하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다.” 이것이 그 시대의 모습이었습니다. 경건한 백성들이 불경건한 백성들의 계보에 편입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우습게 여기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배가 무너진 것이 우리 시대의 위기이다

교회의 위기는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무너지는 데 있습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교회는 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배는 무엇 때문에 무너질까요? 세상의 거대한 배교의 물줄기에 휩쓸려 내려가면서 무너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홍수가 나서 물이 창일하게 흘러내려가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홍수가 나면 강이나 시내에 떠내려가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동안에 쌓였던 쓰레기들도 떠내려가지만, 때로는 집이 무너지고 온갖 것이 떠내려갑니다. 가재도구뿐만 아니라 돼지 같은 가축도 떠내려갑니다. 그런데 세상의 불신앙의 도도한 물줄기가 홍수처럼 넘쳐 내려가고 있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역사인데, 이렇게 불경건이 세상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서 경건과 불경건이 동시에 존재하고 함께 대립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한쪽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고, 한쪽은 하나님 없다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외면하는 세력이 점점 커지면서 종말을 향하여 달려가는 시대가 있었던 겁니다. 그 대표적인 시대가 노아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시대는 노아 시대처럼 그러한 상황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참된 경건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스러운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예배를 회복하지 못하면 우리는 이 시대가 종말을 향해 가는 것을 보고 어느덧 노아의 시대처럼 되는 상황까지 가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이 예배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 이 엄숙한 사실을 기억하고 예배를 살리는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참된 경건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복될 때 이 시대는 회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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