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참 예배는 시대의 어둠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10)_시대의 도전을 분별하라(딤후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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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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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는 시대의 어둠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10)

시대의 도전을 분별하라(딤후 4:3-4)


말세에 고통하는 시대가 임할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사도 바울이 그의 제자 디모데 목사에게 목회에 대해 교훈하면서 장차 다가올 미래와 시대의 징조에 대해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나 디모데후서에서 젊은 디모데 목사에게 그가 목회하는 동안 그가 직면하게 될 미래의 교회, 또 시대적인 여러 상황들에 대하여 여러 차례 교훈을 했는데 오늘의 말씀도 역시 그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오늘 3절 말씀을 보면은 “때가 이르리니” 3장에도 이미 이런 표현을 사용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그러니까 말세라고 불리우는 특정의 시대가 임할 것이며 그 때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중요한 특징들을 여러 가지로 말씀하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말세의 가장 중요한 특징, 아주 두드러진 특징 혹은 그 시대의 본질은 바른 교훈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귀가 가려워서,” 즉 바른 교훈은 귀에 거슬립니다. 그래서 자기 귀를 긁어줄 수 있는 다른 소리를 찾아갑니다. 그리하여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게 됩니다.” 결국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허탄한 이야기, 헛된 말. 아무 쓸모 없는 말, 가치 없는 말을 따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이런 현상들을 주변에서 참 많이 목격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를 전후해서 우리나라에서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자주 사용했던 말이 있습니다. “패러다임을 바꿔라”가 그것입니다. 이 말은 사실 그분이 독창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때의 미국에서 미국 교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일단의 흐름 속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 ‘시프트’는 바꾼다는 말입니다. 컴퓨터 자판에는 시프트 키가 있습니다. 이 키를 누르면은 이제 현재 자판에서 나오던 글자가 아니라 다른 글자가 나옵니다. 시프트 키를 누르면 이런 것들이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패러다임 시프트”라는 것은 이 세계의 틀이 변하고 있으므로 이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함께 변화하면서 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만 가지고는 아주 지혜로운 말입니다. 그런데 “패러다임 시프트”라는 말은 사실은 교회에서보다는 일반 사회에서, 특별히 경영학이나 마케팅 같은 데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였습니다. 그 시대에도 마케팅하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패러다임을 바꾸라고 소리쳤습니다. 당시 삼성그룹 회장이었던 이건희 씨도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라”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교회에 아주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시대가 변했으니 교회도 변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변화의 기준이 항상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변화의 기준이 항상 사람이었습니다. 교회가 변화되기 위해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항상 사람을 향해 갔습니다. 바로 이것이 변화에 대한 주장에서 가장 크고 심각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교회가 변화되기 위해서 왜 사람을 향해 가야 합니까? 그것은 그 당시 이 변화의 메시지가 경영학과 마케팅 전문가들로부터 나온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무엇일까요? 고객 중심입니다. 옛날에는 우리도 많이 쓰던 말이 있습니다. “고객이 왕이다.” 그런데 이 고객 중심의 사상이 교회 안에 그대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고객에게 설문 조사를 하여 고객의 관심과 욕구 같은 것들을 파악하여 고객의 욕구를 반영한 마케팅 전법을 연구합니다. 이렇게 하여 고객의 취향과 욕구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고객들의 취향과 고객들의 필요가 변하면 마켓팅의 전략도 변화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상이 교회 안에 그대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변화의 기준이 문제다

『경영학에 물든 기독교』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이 지적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빌 하이빌스라고 하는 목사는 자기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없애는 자리까지 나갔습니다. 주일 예배를 없앴다기보다는 성도들이 예배하는 주일 예배를 없앴습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은 토요일에 모이자. 주일은 구도자(Seeker) 예배를 드린다. 구도자는 전도 대상자를 의미합니다. 전도 대상자를 위한 예배는 성도들을 위한 예배와 같을 수 없다. 구별하자. 그렇게 해서 성도들 을 위한 예배를 토요일로 옮기고, 주일날은 구도자들, 즉 전도 대상자들을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맞춤 집회를 제공하자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로는 굉장히 신선한 개념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으면서 그 교회가 크게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목회 초년생으로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날을 귀하게 여기지 말며”라는 성경 구절을 보면 “그래, 주일 을 바꿔도 되지 않나? 어쨌든 일주일에 하루만 하나님께 구별된 날로 지키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날을 고정하는 문제는 주님께서 정하신 일이었습니다. 안식일도 주님께서 “내일은 안식일이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안식일의 날짜를 지정해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이 주일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수요일을 주일로 지키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고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문제는 “구도자 예배”라는 것이 과연 맞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도자는 전도 대상자인데 이 사람들에게는 참된 예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에서도 전도 대상자들을 위한 집회는 우리가 아는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사람 중심 문화 중심이 문제다

결국 이런 일들이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까요? 젊은 목회자들이 교회를 개척하거나 청빙된 교회에서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시대에 맞추고,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어 목회하는 일들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일종의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스스로 이머전트(emergent), 혹은 이머징 처치(emerging church)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상당히 신선합니다. 시대가 변했고 교회는 시대에 맞춰가야 한다. 현대 교회는 그렇지 못해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고 사람들이 교회에 오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교회는 새로워져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교회로 올 것이다. 하면서 많은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항상 문제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입니다. 변화하는 거 좋습니다마는 무엇을 기준으로 변화해야 하겠습니까? 역시 이분들도 항상 마케팅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변해야 한다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자세히 살피고, 어떻게 해야 참된 모습이 될 것이냐 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교회의 모습이 지금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도 시대에 맞추기 위해 점점 변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과거의 교회와 지금 우리 교회가 상당히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여기 중고등부 학생들 시절에 다니던 교회와 제가 지금 목회하고 있는 교회는 같지 않습니다. 많은 면에서 달라졌습니다. 그때는 금요일 밤 10시 모여 철야기도회를 진행했습니다. 밤 10시에 시작하면 새벽 2시까지 4시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금요일마다 7시, 혹은 7시 30분에 정해진 가정에서 모이는 구역예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역 예배를 마치고 나면 다 같이 철야기도에 참석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대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에 통하던 것이 지금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회마다 많이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도 해봤던 일이지만 금요기도회를 중단하고 대신 수요예배를 끝내고 잠깐 기도하는 것으로 대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금요일에 기도회를 진행하지 않으닊 저도 그렇고 성도들도 그렇고 뭔가 허전합니다. 점차 경건 생활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금요 기도회를 다시 회복시켰습니다. 금요 기도회에 과거처럼 많은 분들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라도 금요 기도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그에 따라 교회도 수없이 많이 변해 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새롭게 되려면 항상 어디를 살펴보아야 될할까요? 사람을 기준으로 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기준으로 해야 할까요? 최근에 일어나는 많은 변화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교나 신비주의 의식이나 상징 사용의 문제

세상 문화가 변화의 기준이 되는 일도 있습니다. 세상의 문화들이 교회에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예배나 교회의 의식에 사람들에게 어떤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것들이 많이 동원됩니다. 그중 하나가 고대의 신비 종교의 장식이나 제의입니다. 고대의 신비 종교 제의 중에는 그리스의 주신(酒神) 바카스 축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신비주의 축제입니다. 이런 신비주의 축제 같은 것들은 이집트를 비롯하여, 페르시아나 기타 여러 민족들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현대 교회가 수용하고 있습니다. 제의나 장식의 일부를 교회 예배에, 혹은 교회의 여러 행사에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사용되었던 그림들, 혹은 어떤 우상 같은 것들을 가져다가 비치하고 있습니다. 혹은 동양의 선과 명상 이런 것들이 교회의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된다든지, 혹은 중세의 신비주의나 카톨릭의 수도원 전통 같은 것들이 영성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교회 안에 무분별하게 수용되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목사 개인의 취향과 그의 생각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목사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큰 문제입니다. 교회마다 목사들이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그대로 하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특별히 예배에 있어서 자신들의 개인적인 생각들이 총회의 예배 모범이나 교회의 전통과 상관없이 그냥 시행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준은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이다

점점 우리는 이 시대가 사람 중심, 사람의 생각 중심, 개인의 취향과 목사 개인의 아이디어 같은 것들로 변화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큰 문제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고 우리는 이러한 시대 변화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 중심이거나 인간의 취향이나 아이디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역사성을 가지고 깊은 연구와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총의가 마련되는 쪽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 면에서 우리는 지금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교회의 변화가 개인적인 취향으로 결정된다면, 이것이 성도들의 취향을 따른 것이든 목사의 취향을 따른 것이든 교회를 세우는 진리가 무너지는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진리는 곁으로 밀려나가고 사람들의 취향과 생각이 항상 앞서게 되는 현상이 교회의 일반적인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 목사에게 경고했던 모습. 오늘 우리가 디모데후서 4장 3절, 4절에서 보는 모습은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오늘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참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참 예배는 진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참 예배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참 예배에는 진정한 감격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영광스러운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예배의 본질을 이해하고 우리 시대에 진행되고 있는 거짓 예배와의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워 승리하는 자리에 이르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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