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시대의 격랑속에서 진리의 인도하심을 따르라(10)_새 관점의 언약과 종말론(행 7: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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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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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격랑속에서 진리의 인도하심을 따르라(10)

새 관점의 언약과 종말론(7:51-53)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 것이 하나님의 의라고?

새 관점1세기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소망과 신념이 현대 기독교의 뿌리라고 하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1세기 유대인들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나라의 참된 회복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빌론 포로에서 해방은 되었지만 아직 참된 회복은 임하지 않았다고 믿었습니다. 다윗의 왕국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오심으로 이 일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찾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톰 라이트는 이것을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그의 십자가와 죽으심과 부활로 약속을 지키셨음을 증명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언약을 지키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하나님의 의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언약에 신실하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데 이것이 칭의라고 주장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행위 종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루터가 잘못되었다. 그리고 루터를 따라 그렇게 주장하고 믿어왔던 개신 교회의 모든 신학은 잘못되었다고 단언합니다.

 

죄인의 죄를 심판하신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의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믿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피 흘리시므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값을 대신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실을 근거로 하여 죄인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죄인이 죄값을 치르지도 않았는데 죄인을 용서하셨다면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의 죄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죄값을 모두 치르게 하셨고, 그것을 근거로 하여 죄인의 죄를 용서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이 행위가 의로운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돌아가시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그에게 지게 하시고 죄값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실로 우리의 죄를 지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형벌을 대신 받으신 분이십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인의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근거로 하여 이 사실을 믿는 모든 자에게 죄 사함과 의로움과 하나님의 자녀 됨과 영원한 기업의 상속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죄에 대한 심판인 속죄에 대해 모호하다

톰 라이트는 이 모든 것을 모두 부인합니다. 그는 그냥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신 것을 지켰다고만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이며, 이 사실을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고 하신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수님을 부활시키셔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인 것을 증명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새 시대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기독교는 갱신된 유대교라고 주장합니다. 유대교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종교와 정치와 그들의 삶을 통합하고 있는 통전적인 개념입니다. 그는 유대인은 하나님께 이 세상을 죄와 악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사명을 받았는데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을 대신하여 이 사명을 감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구원이 이 세상에 임하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의 언약 전부를 살펴야 한다

여러분은 이런 주장들을 잘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톰 라이트는 시종일관 언약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성경 전부의 언약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항상 1세기 유대인들의 신념과 소망을 가장 우선적으로, 그리고 그것을 가장 선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1세기 유대인 출신으로서 1세기 유대인들과 동일한 신념과 소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 신념과 소망을 그대로 가진 채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깨닫고 메시아를 선포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고 있는 언약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요? 그가 말하는 언약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유대 국가를 회복시키신다고 하신 약속입니다. 기독교 2천 년 역사 속에서 많은 학자들과 성도들은 언약에 대해 많은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톰 라이트는 이 모든 자료들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고 취급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오로지 바울에게만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1세기 유대인이었다. 바울이 1세기 유대교 출신이었다. 바울은 유대교 그 1세기 유대교에 충실한 인물이었다. 그 사실을 입증하는데 많은 자료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했던 이유는 현대 유대인들의 비극 때문이었습니다. 나치 독일하에서 유대인 600만 명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중세 천년 동안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말할 수 없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 사실에 대하여 양심적으로 반응을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현대 유럽 정치계와 학계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유대인에 대하여 원죄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에 대하여 부정적인 표현하는 것은 하나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용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대학에서도 용납되지 않는 것입니다. 톰 라이트도 동일한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톰 라이트는 19세기 이후 바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바울은 헬라식 기독교를 창시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반유대주의 신학이라고 낙인을 찍습니다. 그리고 반유대주의를 논박하기 위해 친유대주의 신학을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1세기 유대인들을 긍정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했을 뿐이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소망과 신념은 옳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1세기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소망과 신념을 그대로 가지되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인 것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사명을 대신하신 메시야?

그러나 정말입니까? 하나님께서 과연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 세상을 죄와 악으로부터 구원하시고자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 세상의 죄와 악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주셨을까요? 물론 따지면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가령 우리들이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복음의 사명을 받았아고 말합니다. 복음의 사명을 받았다는 것은 이 세상을 죄와 악으로부터 구원하라는 사명을 받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했을 때 결과적으로는 복음을 받은 자가 죄와 악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과 세상을 죄와 악으로부터 구원하라는 사명이 동일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을 죄와 악으로부터 구원하는 사명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보내신 중보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을 죄와 악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은 우리들의 사명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차이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 전파하고 복음이 들어간 곳에서 결국은 구원이라는 결과가 나오지만 그렇다고 하여 죄와 악으로부터의 구원이 우리의 사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사명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복음을 주신 하나님의 영광과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가지는 사명은 복음으로 이루어진 공동체, 즉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에 대하여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사람들의 삶, 즉 문화를 이루는 것이지만, 문화 자체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명은 또한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근본적으로 성취하는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역사의 종말에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때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때까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already, not yet'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already,'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not yet,'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이미, 그러나 완성은 아닌과도적인 기간입니다. 톰 라이트는 역사의 종말에 대한 기독교의 잘못된 믿음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합니다.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고 예수 믿고 천국 간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도대체 어디서 기독교를 배웠길래 그것 이외에는 기독교가 없는 것처럼 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개혁주의 신학을 전혀 접해 보지 못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가 성장한 배경은 복음주의 성공회입니다. 그는 국가 종교로서 성공회에 대하여 기복종교와 구원 종교에 머물러 있는 모습에 대해 비판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개혁신학의 발달에 대하여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

 

언약은 하나의 약속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언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 약속하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서 우리가 알게 된 것은 결국 성경은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성경을 계약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 성경 시대의 계약에 대한 연구들이 굉장히 깊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서 계약은 인간 세상의 기본적인 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계약이 없이는 사회가 존속할 수 없습니다. 인간 세상은 계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간 세상은 너와 나라고 하는 계약이 있어야 존속할 수 있습니다. 계약은 법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법은 하나님께서 인격적인 관계에 있는 모든 존재들과의 관계를 만드는 원리입니다. 인격적인 존재는 항상 법으로 살아갑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계약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창조한 인간과 하나님은 계약 관계에 들어갔습니다. 즉 하나님은 인격적인 존재로써 인간을 인격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시고 인격적인 존재 사이의 계약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세워 나가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위 언약을 주신 것은 인격적 존재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규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 성경 역사 전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역사의 순간마다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하셨고, 계약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들의 삶을 규정하셨던 것입니다.

 

언약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특별한 뜻으로 계약을 주시는 존재의 삶을 규정하고 그의 사명을 새롭게 하는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노아에게 주셨던 언약이 그렇고,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이 그렇고,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언약이 그렇고, 다윗에게 주셨던 언약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에게 적용되는 새 언약이 바로 그런 특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언약은 이스라엘의 회복이라고 하는 지극히 국지적인 하나의 문제를 규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경 전체적으로 하나님 하나님의 피조물이 된, 아니 인격적 피조물인 인간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 포괄적인 언약 이해가 톰 라이트에겐 없습니다. 그는 오로지 1세기 유대인들이 믿었다는 유대 국가의 회복,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며 이것이 언약이며, 하나님은 이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셨다, 그래서 언약을 성취하신 약속성취,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톰 라이트의 견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것이 기독교 신앙과 교회에 대한 왜곡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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