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시대의 격랑속에서 진리의 인도하심을 따르라(11)_언약과 경륜(창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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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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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격랑속에서 진리의 인도하심을 따르라(11)

언약과 경륜(창 12:1-3)


언약이란 무엇인가?

오늘은 새 관점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하여 언약과 경륜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생각하겠습니다. 언약과 경륜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새 관점의 주장들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그 문제를 파악하고 지적할 수가 없습니다. 새 관점주의자 톰 라이트의 언약 이해는 단순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는 언약을 그냥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1세기 유대인들이 믿었던 하나님의 약속, 즉 하나님께서 유대인 국가를 회복시키실 것이라고 믿었다는 1세기 유대인들의 그 믿음, 그들이 믿었던 하나님의 회복의 약속을 언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약속은 이사야서 40장 이하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 속에 약속되어 있었는데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 메시아 예수를 통해 성취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성취하셨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의라고 주장합니다.


언약이란 무엇입니까? 언약은 인격적인 존재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즉 인격적인 관계는 서로 인격적인 동의 속에서 어떤 사실들을 규정하고 서로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각자의 한계를 정해놓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계약이라고 부릅니다. 인간 세상에서 계약이 없으면 분쟁이 일어나고 사회가 무질서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동물 세상과 똑같은 모양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인간 세상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간 세상은 사회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원리는 어떻고 그 속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이런 관계들이 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 법이 계약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시고 인간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인간의 삶은 그 언약을 순종하므로 그 언약에 약속되어 있는 계약의 내용들이 우리에게 적용되고 시행되는 이루어져 있습니다. 언약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다스려 나아가는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계약이라고 하는 법적 장치를 통해서 인간의 인격적인 승복과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격적인 승복과 순종에 큰 복을 약속하셔서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최초의 언약 행위언약

우리가 성경에서 최초로 발견하는 언약은 행위 언약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셨던 금령(禁令)이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금지 계명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금지 계명을 계약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17세기에 와서 이루어집니다. 근대에 들어와서 근대적인 계약 사상들이 발전하고, 현대에 와서는 중동 지방의 고고학 발굴 자료들을 가지고 고대의 계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연구를 통해 성경의 내용을 계약서 구조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2장에서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따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그냥 하나의 금지 명령이 아니라 알고 보면 하나의 계약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계약 중에서 단서 조항, “따먹으면 죽으리라”라고 하는 부분이 문제가 되어 그 부분만 인용되어 있을 뿐이지 인용되지 않은 다른 부분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인용되지 않은 다른 부분은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 즉 새로운 창조였습니다. 새로운 창조를 통해서 인간은 죽음도 없고 눈물도 없고 병도 없는, 하나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섬기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약속은 행위 언약의 내용 가운데 애초에 들어가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 전부를 연구해 보면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인용되지는 않았지만 성경이 최종적으로 약속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 영광스러운 세계, 영원한 생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 계약서가 있습니다. 그중에 인용된 것도 있고 인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명시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연구해 보면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으나 행위 언약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 당연한 내용이 드러납니다. “따먹지 않으면 너희에게 영광의 생명을 주겠다.” 즉 행위계약은 생명과 죽음의 계약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 따 먹으면 영원한 죽음. 이것이 계약서의 내용입니다. 생명과 죽음이 짝을 이루는 것입니다. 따먹으면 죽으리라. 즉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아니 아담과 하와를 대표로 하여 인류에게 주셨던 행위 언약은 생명을 약속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결국은 생명의 약속을 얻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언약을 주신 이유

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이러한 계약을 주셨을까요? 하나님께서 행위 언약을 주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영생, 즉 영광의 생명이라고 하는 완성된 생명,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그 은혜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영광스러운 교제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인간은 행위 언약을 마음속에 품고 그것을 중심으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행위 언약은 인간의 마음속에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영생이라고 하는 생명의 소망이 인간의 마음과 삶을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섬기며 살아간다.” 그때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 무엇이었을까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을 따 먹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위 언약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역사속에서 많은 세월에 걸쳐 성경 시대에 대한 연구들을 통해서 성경 전부의 교훈들을 깊이 연구하는 과정을 통하여 최근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이 바로 행위 계약이라는 것이 존재했고, 행위 계약의 내용은 생명과 죽음이었는데 그 목적은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마음을 다하여 섬기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아담은 하와와 더불어 에덴동산에서 사는 동안에  행위 계약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행위 계약은 아담과 하와의 삶을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살아야 했던 것은 계약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이었습니다. 계약이 그들의 마음에 있는 동안 그들의 마음속에는 기쁨이 넘쳤고 소망이 넘쳤습니다. 계약이 마음속에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넘쳤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리에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사탄의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신이 그들의 마음속에 싹 트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와가 먼저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선악과를 따먹고 죽음이라고 하는 조항이 그들에게 적용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행위 계약 계약서 원본이 아니라 그중에 있는 이 죽음의 조항이 인용이 되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알고 보면 행위 계약은 완성된 계약의 모양이 있었고 그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계명에 순종하면서 약속하신 영광의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면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주님을 섬겼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지상에서 겪는 이런 문제 없이 벌써 영광의 생명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언약은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과 삶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과 언약을 맺으셨을까요? 우리의 믿음의 삶을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큰 복을 받아 누리게 하기 위해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성경 속의 다양한 언약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면 언약은 아담하고만 맺으셨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성경을 샅샅이 연구해 보니까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아브라함의 언약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 창세기 12장 1절~3절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러면 너에게 네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고,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으며, 또 너를 복이 되게 하겠다. 그리하여 땅의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마음에 담고, 이 약속을 붙들고 가나안 땅까지 갔고, 가나안 땅에서도 이 약속을 마음에 품고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의 마음에 늘 살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서 가는 곳마다 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여 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마음에 깊이 새겼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았던 생애가 아브라함의 생애였습니다.


성경 전부라는 숲을 보라

세 관점주의자 톰 라이트가 주장하는 대로 언약은 그냥 단지 어느 순간의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약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은 관계이며, 자기 백성들의 삶을 인도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언약을 주시고 그들이 언약을 자신들의 마음에 새겨 살아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다스리시는 방법, 이것이 바로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가 이것을 우리에게 가장 잘 보여줍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계약의 원본과 계약의 시행, 위반과 관련된 조항의 인용 등이 자세하게 나옵니다. 이런 것들을 알아야 언약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없이 1세기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국가를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하나님이 자기의 약속을 성취하셨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의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너무나 나이브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범위가 너무 좁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범위 내에서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전부”를 마음속에 꼭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 전부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 전부의 메시지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의 숲 전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난 후에야 그 숲 안에 있는 나무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숲은 제쳐놓고 나무 하나만 가지고 이야기하면 잘못된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언약도 성경 전체를 통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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