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믿음의 주님이신 예수를 바라보자(9)_중보자의 참된 영광(딤전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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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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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주님이신 예수를 바라보자(9)

중보자의 참된 영광(딤전 2:4-6)


유일하신 구원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 

세상에는 기독교에 대해 자기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독선적인 종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연 기독교는 독선적일까요? 기독교의 주장만을 두고 말하면 과연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길도 있는데 어느 하나의 길만 끝까지 주장한다면 고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 길밖에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고집이 아닐 것입니다. 앞에 낭떠러지가 있고 사람들이 그곳으로 눈을 가린 채 가고 있는데, 절벽으로 향해 가는 사람들의 옷을 붙들고 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도 고집일까요?  왜 기독교는 그렇게 선포할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이 바로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기도에 대한 사도의 가르침 중의 일부입니다. 사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평안하기를 기도해야 하겠지만 우리의 기도는 그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4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복음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모든 사람이 십자가의 진리를 마음에 새기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무슨 일을 행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서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세우셨습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창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죄인들을 타락으로부터, 멸망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고, 이 구원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성자와는 구속의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하나님은 성자를 죄가 없는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구주가 되셨던 것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하나님께서 구원 얻을 만한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이름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유일하신 중보자이시기 때문

오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유일한 구원의 이름이 되셨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예수님만 믿어야한다고 말할까요? 왜 우리는 “고집스럽다, 혹은 독선적이다”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어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유일한 구원의 길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다른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즉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으며, 그렇게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중보자이시기 때문입니다. 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중보자”란 양자 사이에서 양자 사이를 중계하는 위치에 있으면서 그 중계를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감당하는 존재를 말합니다. 양자를 연결시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죗값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중보자가 친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려면 반드시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사람은 하나님께 범죄하였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멸망 받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인으로서 하나님께는 원수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에 대해 진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납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죄인을 용납하기 위하여 오직 사랑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랑이 필요한 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사랑이 어떻게 작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단순히 “이제까지 일은 없던 걸로 하자” 하시면서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다 없애줄게” 하셨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을, 죄인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단지 말씀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하여 죗값을 치르시고, 죄인들을 깨끗하게 씻으시고, 그들을 의롭게 만드셔서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이 모든 것을 누가 시행하셨습니까?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께서 시행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납하시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중보자께서 다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는 몇 명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중보자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보자가 갖춰야 하는 자격이 있는데, 그 자격에 합당한 분이 오직 이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시며 무죄하신 인간만이 중보자가 될 수 있다

증보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양쪽을 다 만나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을, 사람에게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행하여,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주선의 능력을 가진 존재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 가운데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갖도록 주선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요? 아무도 없습니다. 가령 여러분이 누군가를 만나서 도움을 얻어야 하는데 그분을 무조건 찾아가면 될까요? 얼마 전에 아는 분이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장 목사님, 누구 누구를 잘 알지요?” “잘 알죠.” “내가 무슨 무슨 일로 그분에게 이러이러한 부탁을 좀 할 필요가 있는데 장 목사님이 대신 어떻게 말씀 좀 해주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어떤 존재가 된 걸까요? 중개인이 된 것입니다. 본인이 직접 하지 못할 때 중간에 중개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누가 대신 가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인간 중에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말씀할 수 있는 분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태초의 말씀이 계시니라. 이 하나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말씀은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과 말씀을 나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마련하신 구원의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말씀하시고,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그리고 이 말씀하신 것들을 실제 성취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대속물로, 즉 죄인을 대신하여 죗값으로 드렸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죗값으로 드리실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죄인을 대신하는 중보자는 무죄한 인간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자께서 무죄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시기 위하여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치를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분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죗값으로 내드리는 일에 동의하시고 결정을 하신 대로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셨던 것입니다.


자신을 대속물로 주신 유일하신 분

여러분, 세상에 이런 분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이분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러주었습니까? 아니 우리 가운데 누가 우리를 위하여 죗값을 치를 수 있겠습니까? 부처라면 가능할까요? 공자라면 가능할까요? 그런 분들이라면 엄청난 분들이겠지만, 그러나 그분들도 역시 죄인인 인간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우리를 위하여 죗값을 칠를 수도 없으며 치른 적도 없습니다. 오직 유일한 자격을 가지신 바로 그분이 유일하게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죗값을 대신 치러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유일한 증보자요, 유일한 대속물로서 우리의 유일한 구주가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분 이외에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구원의 길로 주시지 않으셨을까요? 다른 이름은 이 일을 행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는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참 사람, 참 하나님으로서, 참 하나님으로서는 하나님과, 참 인간으로서는 인간과 통하여 양자를 연결시키되, 이 일이 가능하기 위한 모든 대가를 본인이 친히 치르셨습니다. 화해를 위한 대가가 크면 클수록 아무나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대가가 생명이라면 누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6절). 그리고 바로 그 일이 각 사람에게 가장 좋은 때에 증거되었습니다. 이것이 그 뒤에 나오는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기약이 이르러”는 “카이로스”로서 “가장 좋은 때에”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 번역되지 않은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이디오스”가 그것인데, 이 말은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는데, 그 대속물로 주신 그 효과가 각 사람에게 가장 좋은 때에 증거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도 이것을 사명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마 28:19).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단지 고집스럽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밖에 전할 수 없는 확실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유일한 중보자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직접 만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로서 죄인들의 죗값을 요구하십니다. 더 나아가서 죄인들은 죗값을 치를 뿐만 아니라 완전히 사면되어야 합니다. 그 일을 누가 감당하셨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대속물로서 그 일을 감당하셨습니다. 또 죄인 된 사람 입장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하여 요구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비록 죄인이지만, 나는 멸망 받아 마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저를 사랑해 주세요.’” 이것이 죄인의 요구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요구와 인간의 요구 모두를 채우셨던 것입니다.


대속물로 자신을 주신 분만이 유일하신 그리스도

그런데 그 유일하신 중보자가 나의 구주라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 비로소 그 모든 것들이 나의 것이 됩니다. 이것은 계약이 작용되는 원리를 생각하면 알게 됩니다. 계약이 작용하는 원리는 당사자의 동의입니다. 내가 계약의 내용을 알고, 그 계약의 내용에 진정으로 동의하고 사인을 해야 비로소 그 계약이 나에게 유효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알고, 복음에서 제시한 모든 사실과 약속들을 마음으로 받아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믿음으로 사인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해야 그리스도께서 중보자가 되셔서 행하신 모든 결과를 나의 것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해야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일하신 중보자를 믿는 이 일을 전파할 수밖에 없고, 그리고 이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 있습니다. 유일하신 중보자, 유일하게 나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분, 바로 그것이 유일하신 중보자의 영광입니다. 신천지의 이만희 씨가 자신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자신이 그리스도가 되었다 고 하는데 그렇게 그리스도가 되는 방법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그리스도가 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대속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위임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분도 위임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 되셔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죄 없으신 인간이신 바로 그 하나님, 바로 그분 외에는 우리의 중보자가 없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자기의 생명을 드리신 이분 외에는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신 분도 없습니다. 이런 분이 아닌데 누가 이분과 같은 권위를 내세울 수 있으며, 이런 일을 행한 적도 없는 그 누군가 이분과 똑같은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아무도 그 권세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분과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존재도 없습니다. 이것이 중보자의 참된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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