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5)_하나님 나라의 완성 : 이미와 아직(마 12: 28)
페이지 정보
작성일2024-01-09본문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5)
하나님 나라의 완성 : 이미와 아직(마 12: 28)
부분에 집착하는 현대의 학문적 경향
12월 한 달 동안 생각하는 메시지는 굉장히 중요하면서, 또 혼란도 있고, 정리가 되지 않는 복잡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이 주제는 기독교 2천년 역사를 통해 볼 때에는 그렇게 오래된 개념은 아닙니다. 용어로서의 하나님 나라는 옛날에도 있었지만, 그 성경적 개념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었고, 이것이 우리 앞에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장님과 코끼리 비유가 있습니다. 장님 7명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와서 코끼리를 말하는 데 다 달랐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름대로는 모두 맞는 이야기였지만 틀린 말이었습니다. 이유는 전체를 본 적이 없어서 부분적인 것만 가지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7명의 이야기를 모아 놓는다고 해서 코끼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이야기만 듣고 그림을 그리보면 정말 기기묘묘한 그림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체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한 달 동안 말씀드린 것은 바로 이 전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 전체, 하나님의 계시의 전체적인 모습을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려고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주제를 가지고,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주제는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세계적인 학자도 “기둥과 같더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학자들의 학문적 권위에 굴복해서 저도 똑같이 “기둥과 같더라, 벽과 같더라”라고 말하면 참 편했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이분이 전체를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학문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은 전체를 다루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고 세밀한 쪽으로 들어가서 작은 것을 보는 쪽으로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전체를 공부해서 박사를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중에 수백 분의 1, 수천 분의 1의 한 조각을 공부해서 박사를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오늘날 박사는 지극히 작은 분야에, 그 분야에서도 또 작은 분야에 연구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옛날같이 전체를 통합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박사가 나올 수가 없는 시대입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이 평생 동안 그 분야를 공부해도 다 공부를 못할 상황입니다. 결국 제한된 안목 속에서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현대의 경향이 주는 폐해
방금 말씀드린 현대 학문의 폐혜는 무엇입니까? 현재 세계적인 어떤 학자가 비록 학문적으로 탁월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 분도 부분 부분으로 파고 들어가는 일밖에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전체를 말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학자는 유대인의 왕국만 이야기하고, 유대인의 메시아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유대교의 변형 정도로만 생각하도록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 자체를 유대인 중심으로 구성하는 심각한 문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1세기 유대인의 사상이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에게 그대로 있었고, 그 유대인들의 생각과 다름없는 것을 가르쳤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2천 년 역사 속에 수 많은 학자들과 설교자들이 가르쳤던 이신칭의의 개념은 후대에 잘못 만들어진 개념이고 이는 성경적 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기독교 2천 년의 해석 전통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성경 해석의 관점은 2천 년 전에 성경을 기록할 때 당시의 기록자들은 자신들의 세계관에, 무지몽매한 세계관에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천 년 전 사람들의 세계관으로 기록된 성경은 오늘날 우리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초에는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제거하는 일을 했고, 그러다가 “아니야 무조건 제거할 것이 아니고 이것의 의미를 찾아야 돼”하다가, 이제는 그 의미에 대해 “기준을 바꿔야 돼”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제는 종교개혁의 주장도 새롭게 해석을 해야 돼. 그 관점은 이젠 더 이상 안 통해”라고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자칫 하면 교리는 인정하나, 성경은 전혀 다르게 보는 상황으로 빠져 들어가는 상황이 되었고, 자칫 하면 교리와 성경이 완전히 유리가 되어 나중에는 새로운 성경 해석이 교리를 만들어 내고, 그리하여 기독교가 완전히 변질되는 상황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것 자체가 배교입니다. 뻐꾸기가 자기가 알을 낳아서 키우지 않고 소위 탁란을 합니다. 지금 우리 기독교가 그렇게 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바라기는, 주님께서 저의 이 작은 목소리라도 사용하셔서 이렇게 우리 개혁교회의 탁란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와 같은 현상을 그치고 이 알들을 모두 깨버리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유대인의 국가를 세우신 이유
제가 한 달 동안 말씀을 전하면서 네 번의 메시지를 전했는데, 세 번째 네 번째가 사실은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지난 주일 전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참된 왕이시다” 였습니다. 그 다음 성탄절에 전한 것은 “철장으로 세상을 깨뜨릴 왕이 오셨다”였습니다. 이것은 지상에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왕국을 세워 놓으셨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신 것은 이스라엘 나라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더 큰 것을 위한 것인가? 더 큰 것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 세계를 통치할 위임된 통치자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이 세상을 통치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창세기 1장 26절에 나옵니다. “다스리게 하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세상을 통치하는 것을 사명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통치자에게 합당한 덕목을 가르치셨는데, 그것은 순종을 조건으로 하는 행위 언약이었습니다. 순종을 배워야 통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순종을 배워야 통치를 할 수 있습니다. 왜 세상 왕이 실패할 수밖에 없을까요? 세상 왕은 왕자 때부터 순종을 배우지 않고 통치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국가를 선택하신 데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창조 세계가 사탄에게 넘어간 것을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룰 사람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선택된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선택된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신정 국가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세상 나라와 같이 인간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사무엘은 이 요청을 싫어했습니다. 하나님도 싫어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린 거다. 그리하여 나를 왕이 되지 못하게 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대로 해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허용이었습니다. 그들의 요구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한 번 갈 데까지 가보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 끝은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이었습니다. 멸망 이후에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했다고 회개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참된 뜻을 깨달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기껏 소망했던 것은 마지막까지도 유대인의 왕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유대인의 왕국을 이룰 메시아를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이미 유대인의 나라를 다시 세우거나, 유대인의 왕국을 이어갈 왕에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국가를 세우려고 오신 것이 아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유대인의 국가를 회복하고, 혈통으로 다윗의 왕가를 이어가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에게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유대인들은 벌써 수 백년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을까요? 거듭남입니다. “거듭남”에는 작은 글자로 3)이라고 숫자가 적혀있습니다. 난외주를 보면 “또는 위에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결국 “위에서 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위에서 난다는 것에 대하여 요한복음 1장 11절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기 백성들이 영접지 아니한 왕에 대하여,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리고 13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났다.”이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원리입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하나님의 나라든 유대인의 혈통을 따르는 것입니다. 혈통이 아니라 조금 확대만 하면 할례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유대인으로 편입되는 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이 되거나 유대인을 따라 할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태어나는,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는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고,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거듭남으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선포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이 거듭남은 누구의 역사로 이루어집니까?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에게 역사하셔서 그의 영혼의 성향을 완전히 바꿔놓으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반역의 마음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바꿔놓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늘 반역하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의 법을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통치에 순종함으로 그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통치에 즐거이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나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선포하셨던 것은 단지 유대인의 혈통을 따르는 유대인의 국가라거나 아니면 할례를 통하여 유대인으로 편입된 자들이 유대인이 되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거듭남으로 세워지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
오늘 예수님께서 주셨던 말씀은 바로 이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귀신이 쫓겨났다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일들을 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이런 표징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힘써 증거하셨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 됨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새로운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출애굽기 19장 5절, 6절에 나오는 시내산 언약이 그대로 신약교회 성도들에게 적용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언약에 의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믿는 자라고 할 때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믿는 자는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신 왕국 백성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에서 사도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나 지상에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 되십니다. 이 모든 일들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거듭나는 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들이 가졌던 생각을 포기하지 못한 채 그대로 고집하다가 그만 하나님 나라에서 버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유대인이셨고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대다수도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도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자체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결국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그만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약시대에 이렇게 거듭남으로 불러내신 새로운 백성들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창대케 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오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이 큰 흐름을 알아야 합니다. 이 흐름 속에서 우리는 지금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 되십니다. 우리는 성경의 전체 구조를 알고 그 속에서 우리의 신앙의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생활이 어떠해야 할지 분명한 신앙관을 형성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셨다고 하는 것은 이 거대한 하나님의 나라의 계획을 이루시는 것이 완성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