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그리스도의 오심(1)_그리스도의 초림(사 7: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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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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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오심(1)

그리스도의 초림(사 7:14-16)



초대교회의 부흥과 기도의 유산

우리는 그동안 사도행전의 말씀을 통해 초대교회가 설립되는 과정과 그 역동적인 성장기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교회가 세워지기 전부터 성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으며, 그 기도의 토양 위에서 비로소 성령의 강림과 교회의 탄생이 이루어졌습니다. 교회는 안팎으로 수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 권력의 박해가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성도들 사이의 갈등과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낙심하는 대신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기도로 무장한 공동체는 모든 외적, 내적 시험을 물리쳤고,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흥황하여 모든 대적을 굴복시키는 승리를 맛보았습니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교훈을 줍니다. 교회의 본질은 조직이나 건물이 아니라, 기도와 말씀 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탄의 본질: 초림과 재림의 연결

초대교회의 역사를 묵상하던 중, 우리는 이제 성탄의 계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성탄절을 앞두고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성도들에게 가장 유익할지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주신 감동은, 성탄을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소망과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성탄 메시지는 두 번에 걸쳐 '그리스도의 오심'이라는 대주제 아래 전하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두 가지 차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2,000년 전 베들레헴 말구유에 아기 예수로 오신 '초림(First Coming)'이고, 다른 하나는 장차 구름을 타고 영광 중에 오실 '재림(Second Coming)'입니다. 구약의 수많은 예언은 이 두 사건을 하나의 거대한 구원의 흐름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성탄절이 되면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의 모습만을 생각하며 감상에 젖곤 합니다. 물론 우리를 위해 낮고 천한 자리에 오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성탄의 진정한 완성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소망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초림과 재림이 우리 삶의 현실에 어떤 구체적인 은혜를 베푸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자세로 주님을 기다려야 하는지 함께 깊이 성찰해 보기를 원합니다.


이름 속에 담긴 하나님의 거룩한 소망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이사야 7장은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께 받아 선포한 메시지입니다. 본격적인 강론에 앞서 ‘이사야’라는 이름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사야는 히브리어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명과 존재 목적을 상징합니다.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제 개인적인 경험을 잠시 나누자면, 제 이름은 ‘호익(浩翼)’입니다. ‘하늘 호’에 ‘날개 익’ 자를 씁니다. 사실 이 발음이 조금 어려워서 저도 제 이름을 소개할 때마다 애를 먹곤 합니다. 그런데 이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아버지께 여쭤보니, 유명한 작명가를 찾아가 지어 오신 이름이라고 하시더군요. ‘하늘 호(浩)’ 자는 ‘하늘 천(天)’ 위에 ‘날 일(日)’ 자가 있는 형상으로, 푸른 하늘에 태양이 높이 떠 있는 광경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날개(翼)’가 붙었으니,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하늘의 날개’가 됩니다.

하늘에 날개가 있는 존재가 무엇일까요? 바로 천사입니다. 비록 제 외모는 ‘장사’처럼 보일지 몰라도(웃음),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와 같은 사명을 감당하라는 부모님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목회자로 부르시고 당신의 사자로 사용하시는 계획이 이름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생각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이사야라는 이름 역시 부모의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그 시대와 역사를 향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투영된 이름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자신의 이름 그대로 “여호와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이시다”라는 사실을 평생에 걸쳐 선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사야의 가문: 구속사의 살아있는 계시

이사야 선지자의 가정은 온 가족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살아있는 시청각 교재’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계시하셨습니다.

첫째 아들의 이름은 ‘스알야숩(Shear-jashub)’입니다. 이 이름의 뜻은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앞두고 있었고, 장차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될 암울한 미래가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라는 아들의 이름은 백성들에게 유일한 위로이자 소망의 불꽃이 되었습니다. 비록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고통이 따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백성 중 일부를 남겨두시고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구원의 약속을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기억하게 하신 것입니다.

둘째 아들의 이름은 더 파격적입니다. ‘마헬살랄하스바스(Maher-shalal-hash-baz)’인데, 그 뜻은 “약탈이 신속하고 빠르게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께서 직접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의 이름을 ‘약탈과 파멸’이라고 짓고 싶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기이한 이름을 통해 당시 유다를 위협하던 북이스라엘과 아람 나라가 순식간에 멸망할 것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사야와 그의 두 아들은 ‘여호와의 구원’, ‘남은 자의 회복’, ‘대적의 심판’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온몸으로 증거하는 영광스러운 가문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이름을 불릴 때마다 예루살렘 거리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가 동시에 울려 퍼졌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담아 부르신 거룩한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하스 왕의 위기와 불신앙의 선택

이사야 선지자가 사역하던 당시, 유다 왕국을 다스리던 인물은 아하스 왕이었습니다. 그때 국제 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북쪽의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손을 잡고 유다를 공격해왔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북쪽 저 멀리서는 앗수르라는 신흥 강대국이 몸집을 키우며 전 세계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습니다.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아하스 왕과 유다 백성들의 마음은 “숲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요동쳤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마음이 녹아내렸다고 표현합니다. 대항할 의지도, 방도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이사야 선지자는 첫째 아들 스알야숩을 데리고 왕 앞에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아들을 동행시키셨을까요? 왕에게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이름 자체로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연합군을 향해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궁이에서 불꽃을 다 태우고 남은 부지깽이는 겉으로는 연기가 나고 뜨거워 보이지만, 실상은 생명력이 없고 곧 꺼져버릴 존재입니다. 세상의 권세와 위협이 아무리 거세 보여도 하나님의 눈에는 그저 타버린 막대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하스 왕은 이 약속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대신 더 강력해 보이는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와 동맹을 맺으려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강대국을 의지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더 큰 화를 불러오는 어리석은 길이었습니다.


임마누엘: 영원한 동맹의 약속

믿지 못하는 아하스 왕에게 하나님께서는 친히 한 징조를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그 유명한 말씀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이 선포는 단순히 신학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역사의 격변기 속에서 누구와 동맹을 맺을까 고민하며 두려워 떠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준엄한 가르침입니다. “너희의 참된 동맹은 앗수르도 애굽도 아니다. 오직 나 하나님만이 너희와 함께하는 유일한 동맹이다!”라는 선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 정세의 흐름을 읽기 위해 애를 씁니다. 벌써 1년 전부터 내년의 트렌드를 분석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어디에 줄을 서야 성공할지, 어떤 정보가 돈이 될지 연구하며 그것을 지혜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차원이 다른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본질적인 이유는 우리에게 이 임마누엘의 신비를 완성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 번도 떠나신 적이 없으며, 언제나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앗수르가 바벨론에게 망하고,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하는 그 무상한 역사 속에서도, 임마누엘 하나님과 동맹을 맺은 사람들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결론: 믿음으로 전진하는 2026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새로운 한 해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2026년이라는 시간의 장막 뒤에 어떤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세계 경제가 어떻게 변할지, 국제 정세가 어떤 소용돌이에 휘말릴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확신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새해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임마누엘’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외적인 환경이 어떻게 변화되든, 그 변화가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하든 사실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우방이 되어 주시고, 우리 마음속에 거처를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초림은 그 약속의 시작이었고,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 약속의 영광스러운 성취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승천하셔서 우리를 떠나신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장차 세상을 심판하고 구원하실 왕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를 보며 임마누엘의 은혜를 감사하고, 동시에 구름 타고 오실 왕을 소망하며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합시다.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이사야의 외침이 여러분의 삶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풍랑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임마누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승리하며 전진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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