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9)_예배의 감격에 빠져라(요 4: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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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3-27본문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9)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요 4:23-24)
뜻밖의 장소, 뜻밖의 사람에게서 시작된 교훈
오늘 우리는 뜻밖의 장소에서, 그리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시작된 예배의 교훈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사역을 마치시고 갈릴리로 돌아가는 길에, 굳이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가시는 일정을 택하셨습니다. 본래 유대인들이라면 갈릴리로 가기 위해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부러 요단강을 건너 동쪽 길을 따라 북상하는 번거로운 여정을 선택하곤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면하지 않기 위해서이며, 괜히 여러 날 그 지역을 지나가며 그들과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굳이 사마리아를 거쳐 가셨고, 그곳에서 일어난 한 사건이 바로 그 이유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곳에 이르러 시장하셨을 때, 제자들이 음식을 구하러 간 사이 우물가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때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인이 물을 길러 나왔고,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 말씀하시면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대화 속에서 여인이 예수님께 대뜸 질문한 것이 바로 예배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여인은 말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즉, 무엇이 참된 예배 장소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이 질문으로부터 생명과 예배에 대한 깊은 교훈이 이어졌고, 그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예배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핵심적인 복음이 되었습니다.
예배의 정의: 하나님의 가치에 합당한 격(格)
예배란 무엇입니까? 예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의식입니다. 영어권에서 예배를 뜻하는 '워십(Worship)'이라는 단어의 원원을 따져보면 그 의미가 명확해집니다. '워(Worth)'는 가치를 의미하며, '쉽(Ship)'은 어떤 정신이나 원리, 행동을 의미합니다. 즉, 예배는 가치 있게 대우하는 행동과 원리를 뜻합니다. 여기서의 가치는 곧 하나님의 가치이며, 하나님의 영광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가치가 크면 클수록, 그 영광에 합당한 예배의 자세와 행동이 따르게 됩니다.
가령 우리가 부하를 대할 때와 윗사람을 대할 때는 그 격이 달라집니다. 군대에서 말년 병장은 부하가 경례를 해도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고 발로 대충 받기도 합니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는 수고를 할 만큼 상대의 가치를 높게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앞에 중대장이나 연대장 같은 윗사람이 나타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경례를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것이 상대가 가진 가치의 차이입니다. 제가 군대에서 위병 근무를 할 때도 대상에 따라 경례의 격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직접 지휘 계통에 있는 지휘관, 가령 연대장 같은 분이 나타나면 구호와 소리부터 달라집니다. 전 부대가 울리도록 큰 소리로 경례를 합니다. 지휘관의 동선에 따라 목소리가 가장 큰 병사를 미리 배치하여, 그 소리만 듣고도 부대 저쪽 끝에 있는 병사들까지 "지휘관이 떴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윗사람의 가치에 따라 대하는 행동과 격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면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맞는 하나님의 가치, 그 영광에 어울리는 격식 있는 행동과 의식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가치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예배의 본질입니다.
장소의 영광에서 예배자의 영광으로
과거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가치를 주로 장소와 환경에서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던진 질문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유대인은 예루살렘을, 사마리아인은 그리심산을 참된 예배 처소라고 주장하며, 어느 장소가 더 영광스럽고 하나님께 합당한가를 따졌습니다. 그들은 예배의 영광을 화려한 예배당이나 장엄한 환경에서 찾았습니다. 유럽의 대성당들을 가보면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압도됩니다. 어떻게 저렇게 가치 있게 지을 수 있을까 감탄하게 됩니다. 그 장소에 들어서기만 해도 하나님이 계신 것 같고,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지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사람들은 그 화려한 환경 속에 자신들의 믿음과 사랑, 헌신을 담아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유럽의 많은 나라가 이 예배당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그 거대한 건물을 채울 성도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예배당을 관리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지만, 정작 그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으로 예배하는 사람은 사라졌습니다. 관광객들의 수입으로 근근이 버티고는 있지만, 이제 그 장소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영광스러운 처소로서의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마음속에 사랑과 충성이 없는 이들에게 거대한 예배당은 그저 부담스러운 유산이 되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의 참된 의미를 밝혀주셨습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장소와 환경이 중요하여 그곳에 모든 것을 투입했지만, 이제는 예배의 가치가 구현되어야 할 자리가 달라졌습니다. 주님은 장소를 말씀하시지 않고 '예배자'를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참된 예배는 대성당이나 화려한 장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진정으로 경배하는 예배자 가운데 임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예배가 준 교훈
장소가 가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예배의 가치는 장소에 투입된 돈이나 화려함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역사 속에서 경험했습니다. 특히 부산에 계신 분들은 피난 시절의 예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전쟁 중에 수많은 이들이 부산으로 피난을 왔고, 제대로 된 거처도 없는 상황에서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성도들이 길거리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모여들었을 때, 그들은 화려한 건물이 없어도 땅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비록 비바람을 겨우 피하는 초라한 환경이었지만, 그 예배가 가치 없는 예배였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의 가치는 하나님의 가치와 동격입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임하시면, 그 장소가 얼마나 초라하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영광이 곧 그 예배의 가치가 됩니다. 하나님은 금으로 장식된 곳에만 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사람 가운데 임하십니다. 아무리 화려한 단장을 했어도 참된 예배자가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가치를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모인 곳에는, 그곳이 천막이든 벌판이든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며 그곳이 가장 가치 있는 예배의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영과 진리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방식
예수님께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과 진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영은 성령인가 아니면 인간의 영인가, 진리는 참된 진실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두고 주석가들이 다툽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예배 가운데 역사하시는 '방식'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예배자의 자세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예배자에게 요구하시는 규격이기도 합니다. 마치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갈 때 그 회사가 요구하는 복장과 태도를 갖추는 것과 같습니다. 면접자가 복장을 갖추는 이유는 회사가 그것을 평점의 기준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과 진리로 역사하시기에, 우리도 그에 맞춰 영과 진리로 준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옥수수 빵을 급식으로 주던 때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빵을 받을 때 맨손으로 나오지 말고 빵 주머니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빵 주머니가 준비되지 않으면 빵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빵 주머니를 깜빡 잊은 저는 신발 주머니에서 신발을 꺼내고 그 주머니를 내밀어 빵을 받아왔습니다. 비록 신발 주머니였지만 무엇이라도 담을 수 있는 '주머니'가 있었기에 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복과 은혜, 능력과 영광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받을 '주머니'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식을 알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가서 "왜 나에게는 은혜를 주지 않으십니까"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예배의 기쁨과 감격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식, 즉 영과 진리의 원리를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진리를 가지고 우리 영혼 속에 역사하시도록 우리가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참된 예배를 위한 세 가지 준비
우리의 예배가 살아있는 예배,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는 복된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역사에 합당한 세 가지 준비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말씀 묵상과 기도의 삶입니다. 일주일 동안 세상 속에서 아무런 영적 준비 없이 살다가 주일 한 번 이 자리에 앉는 것으로는 참된 예배의 가치를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우리의 영이 깨어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제공하는 성경 공부나 새벽 기도, 수요 기도회 등 주중의 여러 기회를 활용하여 말씀과 기도로 한 주를 살아보십시오. 미리 기도하며 주일을 준비하고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면, 그 예배는 반드시 달라집니다. 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진리의 공동체로 준비되는 것입니다. 예배는 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 공동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진리의 교제'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성도 간의 만남 속에 진리가 흐르고, 그 진리로 하나 된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설 때 그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강력하게 임합니다. 진리의 교제가 없는 모임은 그저 종교 행위를 함께하는 집단일 뿐, 하나님의 영광을 경배하는 참된 예배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셋째는 진리의 영광과 아름다움에 합당한 삶이 있어야 합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영광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에 합당한 삶이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르는 삶을 의미합니다. 진리의 영광을 마음속에 품고, 그 아름다움에 순종하기를 즐거워하는 삶이 예배로 이어져야 합니다. 인간적인 제도나 형식적인 절차만으로는 예배가 살아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고, 그 진리를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에 올 때 영과 진리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결론: 영과 진리의 예배자로 서는 복된 삶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어떤 특정한 장소에 신령한 기운이 있다거나, 화려한 인테리어가 하나님의 은혜를 불러오는 시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영과 진리로 역사하기를 원하시며, 그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영과 진리로 준비되어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의 완전함과 하나님의 행복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그것이 예배가 주는 참된 가치이며 풍성한 은혜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 이것이 예배자가 누릴 최고의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장소나 환경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의 예배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과 기도로 영혼을 깨우고, 진리의 교제로 공동체를 세우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으로 예배를 준비하십시오. 그리하여 영과 진리로 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이 주시는 신령한 복과 은혜가 여러분의 영혼과 삶 속에 충만하게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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