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10)_기쁘신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빌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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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3-27

본문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10)

기쁘신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빌 2:13)



신앙생활의 본질적 기쁨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2026년 한 해 동안 우리의 신앙과 삶을 새롭게 갱신하기 위한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는 대주제 아래 아홉 번에 걸친 메시지가 선포되었고, 오늘 우리는 그 대단원의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길을 걸어오며 스스로를 돌아볼 때, 기쁘고 감격스러운 순간도 분명 존재했지만, 사실상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 동안 힘들고 어려운 고비들을 넘겨왔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시간의 총량으로 따져본다면, 우리가 순수한 기쁨 속에 거했던 시간보다 갈등하고, 망설이고, 마음의 짐에 눌려 고통받았던 시간이 몇 배는 더 길게 느껴질 것입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고, 성도 간의 진실한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배우는 일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었습니까? 세월이 흐를수록 과거에 느꼈던 그 작은 기쁨조차 희미해지고, 신앙이 하나의 무거운 의무처럼 변해버린 우리들의 모습은 이 시리즈 설교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메시지들을 통해 우리 모든 성도가 중요한 진리 하나를 깨닫기를 소망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결코 억지스러운 고역이 아니라, 참으로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기쁘신 분이며, 무한히 행복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그 거룩한 기쁨과 행복에 동참하는 것이며, 그분의 생명력 있는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일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기쁨으로 경배하고, 기쁨으로 진리를 소망하며, 기쁨으로 섬김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 우리 안에 계신 활동적인 하나님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하는 빌립보서 2장 13절 말씀은 이 모든 기쁨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히 가르쳐 줍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는 말씀 속에는 우리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모습 세 가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속에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저 멀리 하늘 꼭대기에서 우리를 감시하거나 구경하시는 분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지 두리번거리며 찾다가, 마치 가물가물하게 멀리 떨어져 계신 분처럼 느껴져서 그분께 닿으려면 목청껏 소리를 높여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멀리 계시니 내 작은 신음은 들리지 않을 것이라 여기며 목이 쉬도록 부르짖어야만 응답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결코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다고 선포합니다. 오히려 너무 가까이 계셔서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등불 바로 밑은 가장 밝으면서도 정작 그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듯, 하나님은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 우리 중심 속에 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찾기 위해 외부의 환경을 뒤적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역사한다는 것은 단순히 머물러 계신다는 뜻이 아니라, 끊임없이 활동하고 일하고 계신다는 역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영적 눈이 가려져 그분의 활동을 보지 못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우리 속에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그 찰나의 순간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된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빚어가시기 위해 지금도 우리 안에서 세밀하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 행복하신 하나님의 사역

두 번째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곧 '하나님의 기쁘신 뜻'의 발로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을 행하실 때, 그것은 마지못해 하시는 고역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너무나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정말 즐거우면 콧노래를 부르며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그분의 본질적인 기쁨으로부터 흘러나옵니다.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구원과 인도, 보호와 훈육의 모든 과정은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행하시는 축제와 같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세상의 철학이나 타 종교가 말하는 신관과 성경의 하나님이 어떻게 다른지를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는 신을 '순수한 사유의 존재'로 보았습니다. 그가 말하는 신은 감정이나 관계가 배제된 채 오직 생각하는 과정만 존재하는, 차갑고 고립된 존재입니다. 이러한 신관은 훗날 범신론이나 세계 정신과 같은 개념으로 발전하여, 하나님을 우주 만물 속에 흩어진 어떤 비인격적인 원리로 전락시켰습니다. 반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은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저급한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들로 묘사됩니다. 그들은 육체적인 쾌락과 시기, 질투에 물들어 있으며, 인간의 삶을 유희의 도구로 삼기도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는 그의 저작 '신국론'에서 이러한 이방 신들의 부도덕함과 타락상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도덕적으로 파탄 나고 음란하며 지저분한 행태를 보이는 존재들을 어찌 신이라 부르며 숭배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계시하는 우리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이 영원 전부터 서로를 무한히 사랑하며 완벽한 인격적 교제와 연합 속에 거하십니다. 이 사랑의 사귐 속에서 하나님은 결코 외롭지 않으시며, 그 존재 자체가 완벽한 기쁨과 행복 그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은 결핍이 있어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넘치는 행복을 우리에게 전파하고 나누어 주기 위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목적 또한 하나님의 이 거룩한 행복에 우리를 초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비록 인간이 죄로 인해 그 행복의 자리를 떠나 방황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다시 그 행복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본질입니다. 구원은 단순히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행복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초대'인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과 안식: 영원한 즐거움의 선취

세 번째로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소망'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선한 소원을 두시고 행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소망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신 말씀은 단순히 감정을 억지로 짜내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확고한 뜻이며,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 우리의 근원적인 힘이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충성된 종들에게 "내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축복하십니다. 이 즐거움은 역사의 종말에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 우리가 누릴 온전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를 '안식'이라 부릅니다. 안식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이 아니라, 창조와 구원의 완성을 축하하는 거대한 '축제'입니다. 세상에서도 큰 공사를 마치면 완공식을 열어 경과를 보고하고, 수고한 이들에게 포상을 하며 함께 음식을 나누고 박수치며 기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되는 그날,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그 완성의 기쁨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그 영광스러운 미래의 기쁨을 지금 이 땅에서도 맛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신학적으로 '선취(Anticipation)'라고 합니다. 장차 이루어질 영원한 기쁨의 일부를 오늘 우리의 예배와 삶 속에서 미리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해 예배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그 순간 우리는 하늘의 기쁨을 맛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 1장 4절에서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한 것처럼, 복음을 나누고 진리 안에서 교제하는 모든 과정은 우리 안에 기쁨을 채우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저 또한 설교를 준비하며 때로는 육체적인 피로와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면 말씀 전하는 것이 더 이상 두려움이나 짐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진리의 체계를 나누고, 여러분이 이 진리를 깨달아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의 큰 즐거움입니다. 설교자와 청중이 그리스도 안에서 기쁘게 교제하는 이 시간이 바로 하늘 기쁨의 예표가 되는 것입니다.


실천적 권면: 생각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시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무거운 짐을 진 채 억지로 발걸음을 옮기지 마십시오. 마음의 빗장을 열고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나아가기로 결단하십시오. 우리의 생각 하나가 바뀌고 마음이 변화될 때, 우리의 인생 전체가 변화되며 영원한 운명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 오늘 또 교회에 가야 하는구나"라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러 간다"는 기대로 생각을 바꾸십시오. 교회에 오기 전 거울을 보며 한번 환하게 웃어 보십시오. 미소를 머금고 성도들을 대하며 기쁘게 인사해 보십시오. 무표정한 얼굴이 아니라 기쁨이 묻어나는 얼굴로 서로를 마주할 때, 우리 공동체는 비로소 살아있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여호와의 집에 함께 올라가자 할 때 내 마음이 기뻤도다"라고 고백했던 그 감격이 오늘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기쁨으로 하나님을 대할 때, 하나님께서도 그분의 무한한 기쁨과 행복으로 우리 영혼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은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존 파이퍼 목사는 이 둘 사이의 관계를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즐거워하며(and)'라는 단어를 '즐거워함으로써(by)'로 바꾸어 설명했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큰 만족을 누리고 그분을 기뻐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붙들면 우리 신앙생활의 모든 동기가 변화됩니다. 주방 봉사를 하든, 힘든 직무를 맡든 "왜 나만 이렇게 고생해야 하나"라는 원망 대신 "나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쁨으로 접근해 보십시오. 생각을 바꾸면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립니다.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 하늘에서 우리의 상이 큽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신뢰하는 삶을 살라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시작하신 이 선한 역사를 끝까지 이루실 것을 신뢰하십시오. 저는 베드로전서의 "너희는 겸손하라 때가 되면 주께서 높이시리라"는 말씀을 평생의 기도로 삼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우리를 높이시고 완성하실 것을 믿는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 현장에서 쉬지 않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완전함과 탁월하심을 아는 지식을 끊임없이 추구하십시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 안에 쌓일 때, 그 지식은 지성적인 차원을 넘어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변화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를 참된 행복으로 인도합니다. 구원에 나타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 지혜, 능력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그 안에 담긴 무한한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님의 행복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위해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과 부분을 구별하여 기꺼이 드려 보십시오. 어린아이가 아끼던 과자를 부모에게 쑥 내밀 때, 부모는 그 마음이 기특해 훨씬 더 크고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까워하며 덜덜 떠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신뢰로 우리의 삶을 드릴 때 하나님은 "내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며 우리를 그분의 풍성한 행복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온전히 이루실 줄을 확신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이 복된 삶의 주인공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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