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주일_내 어린양을 먹이라(요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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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5-21본문
어린이주일
내 어린양을 먹이라(요 21:15)
절망의 현장, 갈릴리 바닷가에 찾아오신 예수님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성경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시점 이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셨고 제자들에게 그 영광스러운 몸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부활의 영광에 사로잡힌 승리자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부활의 믿음이 확고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것이 자신들의 현재 삶과 앞으로의 사역에 어떤 구체적인 의미를 주는지 알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 알던 곳, 삶의 터전이었던 갈릴리로 돌아갔습니다. 이 갈릴리로의 회귀는 단순한 귀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명으로부터의 도망이었고, 실패한 자의 뒷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예전에 하던 고기 잡는 일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일곱 제자는 밤이 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그날 밤 그들은 단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육체는 고단했고, 마음은 공허했습니다. 3년 동안 주님을 따랐던 세월이 마치 한바탕 꿈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던 기억,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그 수치심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 고기잡이의 현장, 실패와 자책이 가득한 그 현장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해변에서 불을 피우고 조반을 지으시며 그들을 기다리셨습니다. 밤새 수고하여 지치고 시장한 그들에게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시는 세밀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특히 실패의 자책감 속에서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괴로워하는 베드로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질문을 던지시며 그의 무너진 마음을 회복시키시고, 잃어버린 사명을 다시 일깨우셨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게 하시는 이 놀라운 회복의 역사가 오늘 말씀의 서막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서막과 사명의 위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이후, 이제 성천(승천)을 눈앞에 두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의 교회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소망하던 이스라엘만의 민족적 왕국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거대한 '신약 시대'가 활짝 열린 것입니다. 이 신약 시대의 주역들로 부름받은 제자들은 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며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해야 할 영광스러운 사명을 받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자들의 상태를 보면 이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패배감과 좌절감, 그리고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자기 혐오감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감히 이 영광스러운 주님의 일에 자신들이 합당치 않다고 스스로를 정죄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주님을 부인한 자인데, 내가 어떻게 다시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나를 만나리라"고 미리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갈릴리를 찾은 이유는 복음의 현장을 준비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전에 하던 고기잡이로 돌아가 과거의 삶 속에 자신을 숨기려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앞으로 계속 고기잡이를 하며 평생을 보낼 생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순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의 실패한 고기잡이마저도 개입하셨습니다. 밤새 허탕을 치게 하심으로써, 주님 없는 삶은 헛된 것뿐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 좌절감을 극복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을 때, 주님은 그들을 찾아와 위로해 주셨고, 영적인 힘과 육적인 힘을 모두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를 힘 있게 맞이하기 위해, 지쳐 있는 일꾼들에게 다시 일어설 명분과 용기를 주신 것입니다.
'내 어린 양'을 향한 특별한 시선
제자들을 회복시키시는 과정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새로운 시대적 사명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명은 놀랍게도 가장 연약한 자들을 향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신 주님은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언급하신 '어린 양'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흔히 요한복음 21장을 설교할 때, 우리는 '사랑하느냐'라는 질문과 '먹이라'는 명령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어린 양'이라는 표현이 유독 제 마음에 깊이 부딪혀 왔습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세 번째 명령에서는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지만, 첫 번째 명령에서만은 특별히 '어린 양'을 지목하셨습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 전체를 보아도 성도를 가리키는 용어로는 오직 이곳에서만 단 한 번 등장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어린 양'이라는 단어가 29번이나 나오지만, 그것은 모두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여기서 '어린 양'이라는 표현을 쓰셨을까요? 물론 이 양이 성도 전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이 어린 양은 글자 그대로 '실제로 어린 양', 즉 우리의 '다음 세대'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마음이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신약 시대를 출발시키는 사명자들에게 주님께서 가장 우선적으로 주신 과업은 바로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세대는 다음 시대를 열어가는 가장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다음 세대가 무너져 가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이 말씀은 우리 모두의 심장을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 세대의 위기와 교회의 시대적 사명
우리 자녀들은 세상의 거센 파도 속에서 신앙을 지키기가 점점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주일학교 사역에 헌신하는 분들이 현장에서 비명을 지를 정도로 다음 세대 교육은 힘들고 고된 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은 명확합니다. 새로운 시대는 다음 세대에 대한 사명으로 출발한다는 사실입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실 때, 주님은 '내'라는 소유격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자녀들이, 그리고 이 땅의 어린 영혼들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분께 속한 가장 귀한 존재임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는 우리가 적당히 돌봐야 할 대상이 아니라, 만왕의 왕이신 주님의 소유입니다. 그들이 믿음 안에서 건강하게 자라나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교회는 시대마다 담당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있습니다. 제가 과거에 강조했던 교회의 사명은 '진리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진리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고 말씀이 왜곡되는 시대에, 성경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시대의 교회에게 주어지는 또 하나의 절박한 사명은 바로 '다음 세대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다음 세대의 위기는 곧 교회의 위기이며, 우리가 이 사명을 새롭게 각성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미래는 결코 담보할 수 없습니다.
사역의 유일한 기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께서는 다음 세대 사명을 일깨우시며, 양육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기초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어떤 전문적인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라, 바로 주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교육 현장에서 보듯 전문적인 훈련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양육자가 가져야 할 참된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 영혼 속에 복음이 선명하게 세워질 때 시작됩니다. 복음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이 있고 성령의 역사가 임할 때, 우리 안에서 주님을 향한 사랑이 솟아오릅니다. 이 사랑이 있는 사람만이 다음 세대를 진심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단순히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피로 산 영혼으로 대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섬길 수 있는 동력은 오직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나옵니다. 많은 교사와 부모들이 사명을 감당하다가 지쳐 쓰러집니다. 자신의 환경이 버겁고 삶의 문제가 무거워서 사명을 내려놓고 싶어질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모든 한계를 돌파하게 하는 힘은 우리 안에서 나오는 의지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실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했듯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하게 붙드셔야만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교육적인 기술보다 앞서야 하는 것, 기도의 무릎보다 먼저 확인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향한 우리 마음의 중심입니다.
기도와 헌신: 먹이는 자의 자세
기도 없이 다음 세대를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은 큰 오산입니다. 저는 기도하지 않고도 교사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자기 문제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버거워하던 베드로에게 주님이 요구하신 것은 오직 "사랑"과 그에 따른 "헌신"이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그 사랑하는 대상이 아끼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부모와 양육자들이 자녀 교육을 남에게 맡기거나 시스템에 의존하려 합니다. 전문가에게 맡기고 자신은 감시자의 위치에 서려 합니다. 하지만 신앙 교육은 위탁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직접, 교사가 직접 영적인 양식을 공급해야 합니다. 주님은 "먹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먹이는 행위는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의 삶으로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보다 그들의 삶의 궤적을 보고 자랍니다. 또한 '어린 양'을 보호하고 돌보는 일에는 온 공동체의 힘이 필요합니다. 한 아기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듯, 한 영혼을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서는 온 교회의 눈물 섞인 기도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교회의 역사적 사명으로 고백한다면, 이제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그들에게 두어야 합니다.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의 질문 중 "이 사람들보다"라는 구절은 깊은 묵상을 자아냅니다. 이것은 단순히 곁에 있는 다른 제자들과의 비교나 경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를 "이것들보다"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즉, 네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그 어떤 것보다, 네가 생업으로 여기는 고기잡이나 네가 아끼는 그 무엇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절대적인 헌신을 물으시는 것입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이 '절대적인 사랑'이 필요합니다. 적당한 관심이나 취미 생활 정도의 헌신으로는 다음 세대를 살릴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타인과의 비교에 빠져 있었다면 결코 위대한 사도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는 절대적인 사랑을 회복했을 때, 비로소 주님의 양들을 돌보는 목자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세상의 가치관이나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끊임없이 자문해야 합니다.
약속된 영광: 시들지 않는 면류관
이 사명의 길은 때로는 외롭고 고된 길일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고, 수고에 비해 돌아오는 반응이 차가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훗날 베드로전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우리의 참된 목자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돌보는 영혼들을 가리켜 "내 어린 양"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는 주님의 소중한 양들을 잠시 위탁받아 돌보는 청지기들입니다. 마침내 때가 되어 목자장이신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주님은 당신의 양들을 신실하게 키워낸 자들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세상의 어떤 명예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다음 세대 양육의 사명은 비록 힘들고 어려운 과제이지만,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받을 상급이 크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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