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승리(9)_나의 사랑하는 나라(빌 3:20-21)
페이지 정보
작성일2026-06-28본문
사망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승리(9)
나의 사랑하는 나라(빌 3:20-21)
고등학교 시절 만든 하늘 시민권
오늘 설교 제목은 "나의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이것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자세이고, 또한 앞으로 우리에게 임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소망하는 제목이 되겠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간절히 소망하던 가운데 성경책 한 권을 마련하게 되었는데, 손바닥만 한 영어 성경책이었습니다. 저에게 그 돈이 어떻게 생겼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제가 생명의 말씀사라고 하는 기독교 서점에 갔습니다. 한쪽은 한글, 한쪽은 영어 책들이 있는 매장이었습니다. 영어 매장에서 성경책을 수없이 살펴봤는데, 이것이 제가 그때 산 성경책입니다. 겉껍질은 다 닳아서 떨어지고 해서, 가죽으로 표지만 새로 바꿨고 속은 그대로 있습니다. 이 성경책을 사고 학교에 가면, 아침에 수업 시작 전에 매일 한 장씩 읽었어요. 영어 성경을 쭉 읽어 나가는데, 빌립보서 3장에 이르렀을 때 제 마음에 탁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구절이 있습니다. 그게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이에요.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이 영어 구절을 노트에 옮겨 적고, 그 옆에 간략한 감동의 말을 쓰고, 그것을 마치 명함처럼 만들었습니다. 주민등록증도 없던 나이에 하늘 시민권을 먼저 만들었어요. 시민권 이름 란에 장호익, 생년월일 몇 년 몇 월 몇 일, "위에 적은 사람은 하늘나라 시민임을 증명함." 날짜를 쓰고, 발행자는 누구이신가 — 하늘나라 왕이신 하나님이시지요. 하나님 도장도 없는 시민권을 하나 노트에다가 적어 놓았습니다.
빌립보서의 핵심 주제 — 시민권
신학교에 들어가 성경을 좀 더 공부하게 되었을 때,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특별히 '시민권'이라는 주제로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위치를 가르쳐 준 성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7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그런데 '생활하라'에 각주가 있는데, 원어는 '시민 노릇하라'는 말입니다. 번역자가 '시민 노릇'이란 말을 그냥 '생활하라'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3장 20절에서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말을 사용했을까요? 그것은 빌립보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위치와 지위를 떠올리게 하여, 빌립보에 사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 수 있는 내용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는 지중해를 둘러싼 전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였는데, 이 안에는 수없이 많은 나라와 민족들이 존재했습니다. 정복한 지역의 특별한 몇몇 도시에게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가령 우리도 '서울 특별시'라고 말하는 것처럼, 특별시에는 다른 곳과는 구별되는 특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빌립보가 바로 그와 같은 지위를 가진 도시였습니다. 빌립보에 주어진 특전은, 빌립보의 시민이 되면 로마의 시민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시민권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사도 바울이 "나는 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가졌다"라고 말했을 때 로마의 백부장도 두려워 떨었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로마 시민은 함부로 채찍질당하거나 모욕당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나는 황제에게 재판받겠노라"고 말하면 그 지역의 왕들과 총독들도 그를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시민권 가진 사람이 누릴 수 있었던 특권입니다. 빌립보는 당시 게르만 족속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이 야만족들에게 로마의 영광과 권세를 보여주는 모범 도시가 바로 빌립보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나라 파주 임진강변의 마을과 같습니다. 그 마을은 태극기를 높이 세워 놓고, 국가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지원했습니다. 왜냐고요? 북한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강 건너 북한 마을도 마찬가지로 국가가 지어주고 특별히 지원했습니다. 남한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지요. 목적이 있는 겁니다. 빌립보가 그런 목적을 가지고 세워진 로마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빌립보 시민은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고, 특전을 가진 사람이며, 사명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빌립보에서 자기의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 모든 일상이 이민족 게르만 족속들에게는 로마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었습니다. 이것이 빌립보 시민들의 역할이었습니다.
이중 국적자의 정체성
사도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그와 같은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지상에 살고 있고, 지상 나라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중 국적자입니다. 하늘 시민권도 가지고 있고, 땅의 시민권도 가지고 있는 이중 국적자에 해당합니다. 이중 국적자로서 우리는 어느 국적이 우리의 본래 국적인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2년 전쯤 40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 갔던 친구분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이제 미국에서 40년 살고 은퇴했는데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65세가 넘으면 이중국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국적 취득을 위해 6개월을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미국 여권도 있고 대한민국 여권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분에게 무엇이 진짜 국적일까요? 무엇을 위하여 살아갈까요? 애국의 대상은 어느 나라가 되어야 할까요? 예전에 어릴 때부터 영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학생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한국어도 원어민처럼 잘 했어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습니다. "생각은 영어로 하냐, 한국어로 하냐?" 그랬더니 잠깐 생각해 보더니 "영어로 하는 것 같아요"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한국인 혈통이나 한국어 실력이 부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가 생각하는 언어가 무엇으로 결정되어 있느냐 하는 것, 그것이 핵심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여러분은 대한민국 국민이 우선입니까, 하나님 나라 시민이 우선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무엇이 삶의 근본이냐 하는 문제에 대하여 결정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적 주소지를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적 주소지가 분명해야 여러분의 생각과 삶이 올바로 세워집니다.
로마 시민권을 넘어서는 하늘 시민권
최근에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과거 미국에서 자녀를 양육하던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던 말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라며 한국인임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그 아이들은 미국에서 나고 자랐으니, 전혀 한국에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한국인임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상황이 바뀌었답니다. 한국인이라 하면 친구들이 몰려와 한국에 대해 물어봅니다. 그러면 정작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 아이가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한국어 좀 해봐"라는 말에 한국어를 못 한다는 것이 드러나자, 부랴부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인에 대한 자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일이지요.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바로 그런 모습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려 하는데, 아이들이 그리스도인임을 거부합니다. 마치 미국에서 한국인임을 부끄러워했던 그 아이들처럼.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문화가 이 세상 가운데 영광스럽게 드러나는 날, 그 상황은 완전히 바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 육신의 삶의 터전이 이곳이라고 해서 이것이 우리의 본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영적 주소가 우리의 참된 주소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로마의 시민권은 대단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그것을 원했는지, 군대에 들어가 10년을 복무하면 시민권을 준다는 법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을 만났던 로마의 백부장이 "나는 아직 시민권을 못 가지고 있다"며 놀랐는데, 사도 바울은 "나는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백부장은 시민권을 얻기 위해 군대에 온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더 근본적인 것으로 여겼던 것은 바로 하늘나라의 시민권이었습니다. 그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나의 왕 나의 하나님으로 증거하면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역사의 완성을 소망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영광
빌립보서 3장 20~21절을 보면,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지금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오시는 그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 현재의 우리 육신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됩니다. 이 변화의 소망을 가지고 사도 바울은 항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 1:20~21) 이것이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도 바울의 생사관이었습니다. 살면 사는 대로 그리스도께 영광이요, 죽으면 죽는 대로 그리스도께 영광이요.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정복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그 안에 확고하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정복하신 분이 나의 왕이신데, 그분이 나를 그 나라로 이미 옮겨 가셨는데, 내가 그 나라의 시민권을 가졌는데, 내가 어떻게 죽음을 두려워하며 굴복하여 살아갈 수 있겠는가?" 빌립보서 1장 23절을 보면, "내가 사는 것과 죽는 것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미 죽음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은 끝났고,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성도들이 부활할 것이므로, 마지막 성도의 부활로 죽음은 최종적으로 끝났다는 이 증언이 완결될 것입니다.
왕 앞에서도 굴하지 않은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의 오해, 심지어 자기가 개척하여 세운 교회에서조차 발생한 비방들, 육신적 고통, 살 소망이 끊어지는 절망적인 상황까지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왕들과 총독들과 부자들을 만났습니다. 허름한 옷을 입었을지라도, 왕들 앞에서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화려하게 차려 입은 왕 앞에서도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깜짝 놀랐던 것입니다. "네가 죄수의 몸으로서 어떻게 나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권면할 수 있는가?"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그의 왕이 어떤 분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3장 21절의 표현대로, 그분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 즉 만물을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만물을 통치하시는 왕의 백성이었기 때문에, 지상에서 한 작은 지역을 다스리는 왕의 영광을 뛰어넘는 믿음을 가지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곧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주를 통치하시는 왕으로 믿는 믿음, 죽음을 정복하신 최고의 권세자라고 믿는 믿음, 우리의 육신을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시키실 분이라고 믿는 믿음, 지상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영광으로 우리를 영접하신다고 믿는 믿음 — 이것이 사도 바울의 정신 세계, 즉 믿음의 내용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땅을 사는 사람들이지만, 우리의 영적 주소는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주소가 하늘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늘나라의 왕은 죽음을 정복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만물을 통치하고 계시며, 이 땅에서 신음하는 우리를 영광의 몸으로 변화시키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지상의 삶을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