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시는 하나님(1)_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시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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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6-28본문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1)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시 121:1)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21편 1절의 말씀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하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을 보면 120편부터 134편까지 15개의 시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은 성전에 올라가는 것을 산을 향하여 올라가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자기 삶의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을 자기의 왕으로 모시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이란 삶의 핵심이란 의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중심으로 살아갈까요? 어떤 사람들은 가족들과의 사랑의 교제를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일까요? 가족이 가장 중요합니다. 모든 일에 앞서 가족이 1번 순위가 됩니다. 이런 분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보다도 가족 행사에 더 큰 가치를 두고 그것을 추구하는 삶을 삽니다. 그러나 가족관계란 처음에는 좋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고 결국 말할 수 없는 좌절과 실패, 혹은 서운함 섭섭함 등을 경험하면서 크게 실패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모든 것을 맡기는 삶
그러면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 삶의 중심에 누구를 모셔야 할까요? CCC에서 나온 성령 충만한 삶 삶의 비결 소책자를 보면 우리의 삶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좌에 앉아 계셔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자기 중심의 삶을 살아갈 때, 즉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중심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중심이 흩어지고 모든 일들이 혼동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의 왕좌에 계실 때, 즉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을 때 우리 삶은 질서와 균형을 이루게 되고 성령께서 임하사 역사하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하나님을 자기 삶의 중심에 모신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자기의 삶의 왕으로 모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살아가고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심으로 내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와 고난의 의미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마치 투자 신탁과 같습니다. 내가 직접 투자를 하는 것보다는 투자 회사에 맡기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나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이 일을 맡아서 진행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더 수익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신탁을 하게 되면 이 사람들이 그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자기 것처럼 관리해 주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믿고 맡겼는데 믿음에 부합하는 관리를 제대로 안 해 주는 일이 많습니다. 처음에만 성과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얼마 후부터는 점점 떨어집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없기 보다는 안 해 주는 것이지요. 그것이 인간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룹니다 하나님은 할 수 없는 분이 아닙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나님께 ‘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묻는 것은 얼마나 허무맹랑한 질문입니까? 다만 우리에게는 믿음만 필요할 뿐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세우신 삶의 계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 이것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며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나의 삶을 지켜보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 그리고 그 모든 삶의 여정을 마침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영광스러운 곳으로 가게 하신다는 사실. 이런 모든 것들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그분의 통치와 그분의 다스리심을 신뢰하고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현재 내 삶은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하나님께서 이것이 변하여 오히려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되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삶의 기준인 예배와 질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분명히 인정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으로서 마땅히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며 모든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삶의 기준으로 세워 놓습니다. 즉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기준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삶의 기준이 움직이면 삶이 엉망이 됩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우리의 삶의 기준으로 정하셨습니다. 예배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흔들립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기준을 확실하게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기준으로 우리의 삶을 정렬해야 합니다. 예배를 1번으로 정해 놓고 그다음에 모든 일들을 정렬해 나가는 것이죠. 예배를 삶의 중심에 세우십시오. 예배가 중심에 있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 우리의 마음이 혼동될까요? 왜 우리의 마음이 움직일까요? 왜 우리의 마음에 견고함이 없을까요? 그것은 예배가 우리의 삶의 중심에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지탱하는 말씀과 기도, 그리고 온전한 믿음
한편 예배의 삶을 능력 있게 하는 것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과 말씀과 기도가 없으면 예배의 삶이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없으면 예배의 삶에 집중되지 않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없으면 예배의 삶에서 기쁨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힘과 능력을 받는 사람. 그가 예배를 지킬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과 기도가 없어지면 예배가 무너지고 우리의 삶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을 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온전한 믿음입니다. 믿음은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라.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성장의 최종 목표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이 어디에까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즉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성인으로 성장하신 곳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고, 하나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바받으셨습니다.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고, 또한 사랑받는 삶의 성장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성장의 과정을 거치시되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그에게 역사했고 성령이 그에게 역사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양식으로 삼아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구속주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고 하늘로 올리셔서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성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성장의 모범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산 넘어 산인 여정, 하나님께 더 가까이
시편 121편 1절의 말씀은 바로 이런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여기 산은 원문을 보면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산들’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그러므로 여기에 산은 시인이 사는 곳에서 예루살렘, 특별히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 있는, 혹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통치의 영광이 있는 시온산, 그 산을 향하여 나아가는 여정에 있는 ‘산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다 압니다.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삶을 살아가는 여정은 만만치 않습니다. ‘산들’은 바로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이 겹치고 겹치고 겹쳐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은 ‘산 넘어 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산 넘어 산이란 어려움이 자꾸만 반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산을 하나 넘어섰더니 또 그 앞에 산이 나타나고, 그 산을 넘어섰더니 그 앞에 또 다른 산이 나타납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계신 곳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 있는 수많은 어려움들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산들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그때 시인의 마음속에는 이 여정은 나 혼자 힘으로는 갈 수 없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은 만만한 삶이 아닙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삶입니다.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이 찬송은 바로 이런 여정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찬송은 야곱의 여정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자기 형 에서를 피하여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도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그는 아침 일찍 해가 뜨기도 전에 짐을 싸 들고 몰래 집을 나왔습니다. 얼마나 정신없는 여정이었는지 하루 종일 길을 가다가 해가 져서 한 곳에 멈춰 돌을 베개로 삼아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찬송가 338장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 여정을 ‘Nearer, my God to Thee’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여정으로 표현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는 십자가를 지는 것 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노래하면서 가겠노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여정은 ‘십자가를 지는 것’ 같은 고난의 길이지만 그때 내 입에서는 노래가 끊이지 않습니다. ‘내 주께 더 가까이. 내 주께 더 가까이.’ 나는 나그네가 되었고, 해는 어느덧 떨어져 어두움이 나를 둘러싸고, 나는 돌을 베개로 삼아 누웠는데, 그때 꿈속에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셨습니다. 내 속에서는 계속해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내 주께 더 가까이’ 저는 이 338장 찬송을 참 좋아합니다. 이 찬송을 노래한 사람들, 혹은 합창단이 굉장히 많습니다.저는 이 찬송의 각종 버전을 모아 장거리 운전을 할 때 듣습니다. 그러면 너무나 놀랍습니다. 주님께 가까이 나아 가는 삶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삶으로 다가오는지. 그러나 그 삶이 결코 쉬운 삶은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운 삶입니다. 그러나 그 삶은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 삶은 가치 있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역사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시고,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영광스럽게 하시는 삶입니다. 여러분 이 삶을 한번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믿음을 가지고 산다면 이 체험의 세계가 여러분의 삶 속에 있어야 합니다. 이 체험이 없이 하나님을 섬긴다면 삶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울 것입니다.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 이번에 이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또 그 삶의 난관과 어려움이 되는 가지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그런 삶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 길을 다 갔을 때 그 길 끝에서 만나는 영광스러운 것들을 함께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길에 난관과 어려움은 있겠으나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는 분이라고 하는 사실과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주시는 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것을 누리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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