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2)_나를 진정으로 도우시는 하나님(시 1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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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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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시는 하나님(2)

나를 진정으로 도우시는 하나님(시 121:1-2)



바람 잘날 없는 인생길 굴곡 많은 삶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보좌를 향해 나아가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보좌를 향해 나아가는 삶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힘들고 어려운 삶까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인생길이 그렇게 쉬운 길일 수는 없습니다. 인생길의 어려움을 노래한 시조 한 수가 생각납니다.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이 물도곤 어려웨라. 이제는 배도 말고 말도 말고 밭갈기만 하리라.' 풍파와 구절양장은 바람 잘 날 없는 세파와 굴곡 있는 삶을 의미합니다. 인생 길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정말 고달픈 삶입니다. 그래서 뱃사공 노릇도 힘들고 또 장사꾼의 삶도 힘들어, 이제부터는 밭갈기만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밭갈기나 하리라'에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저는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아니지만, 농사라고 편하겠습니까? 배를 팔아서 말을 샀다가 힘들다고 말도 팔고 밭이나 갈겠다고 했는데, 밭갈이가 쉽겠습니까? 남들이 볼 때는 다 저절로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 다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뱃사공 노릇 하는 것이 멀리서 관광객이 볼 때는 얼마나 낭만적이겠습니까? 우리는 배가 떠 있는 모습을 보고 '참 멋지다'고 말합니다.


멋지게 보이지만 실상은 고통의 삶

한번은 관광지에 가서 아주 멋진 풍경을 보았습니다. 마침 그곳에 사는 주민이 가이드가 되어 안내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하시는 말씀이, 관광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들은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현대의 편리한 삶은 상상도 못 합니다. 500년, 600년 전에 만들어진 마을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은 옛날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수리도 마음대로 수리하지 못합니다. 어떤 수리를 할 것인지 계획을 정확하게 올려 허락을 받고, 공사가 끝난 다음에는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멋진 관광지에서 사는 삶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삶입니다. 이 가이드분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너무나도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 관광지, 이 문화유산을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도 가지가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어떨 때는 평안한 듯 싶지만 어느 순간 풍파에 휘말리고 정말 견딜 수 없습니다. 눈물과 한숨밖에 없는 나날이 계속됩니다. 앞길이 캄캄하기만 하고 도대체 언제나 이 상황이 해결될지 답답하고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이것이 첩첩산중이요 구절양장이라고 하는 인생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인생길에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을 살아야 하니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길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주님께서는 자기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는 것조차 힘든데 십자가까지 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자기의 악한 본성을 부인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또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습니까? 젊은 시절에야 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안 되겠다 싶은 때가 다가옵니다. 그때부터는 모험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 순간 한 발만 삐끗하면 집안이 다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부터는 한 해 한 해 지나갈수록 마음속에 용기도 사라지고 또한 삶의 모든 여건들도 막히기 시작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모든 것이 열려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하나하나 닫히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결국 한 길밖에는 갈 수 없고 나중에는 그 길조차도 막히게 되고 모든 것이 끝나게 됩니다. 그것이 인생길입니다. 인생길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성도의 죽음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시편 116편 15절 말씀을 보면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을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경건한 자들의 삶이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삶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어려움과 인생의 고난도 만만치 않은데, 경건의 삶을 함께 살아야 하는 성도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삶을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들의 죽음을 귀하게 여기실까요. 요한계시록 14장 13절 말씀을 보면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의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성도가 살아갔던 삶을 수고라는 말로 표현 했습니다. ‘수고’는 무엇일까요? 힘들고 어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이 말씀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정말 만만치 않은 삶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향한 신뢰

시인은 하나님의 전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여정 전부를 바라보면서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생각할 때 그 길은 혼자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돕는 분이 있어야만 갈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우리를 돕는 분이 계신다면 누가 우리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실 수 있겠습니까? 인간 세상의 원리에 따르면 우리가 직면한 난관의 종류, 어려움의 종류에 따라서 돕는 분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 중에 누가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면 어떤 특화된 도우미의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분야별로 돕는 사람들이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서는 이 다양한 분야에 돕는 사람들을 기대하고 소위 인적 네트워크라는 것을 만듭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네트워크로 만들고 그 사람들을 나의 도움의 통로로 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관리하는 명함이 6천 장이 넘는다고 합니다. 인간 세상에는 그런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수없이 많은 사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한 분을 떠올렸습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 하나님은 인간 세상에서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도움의 끝판왕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끝판왕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분은 '천지를 지으신'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이것보다 더 대단한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천지를 지으신 분의 한마디, 아니 눈꺼풀 하나라도 움직이신다면 천지의 모든 것들은 그 앞에 굴복하지 않겠습니까? 시인은 오직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한 분, 바로 이분을 떠올린 것입니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지으신 그분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돕는 것보다 더 큰 도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래 전 자동차가 발명되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이 자동차가 고장 나 길가에 세우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이 차를 세우고 도와주러 왔습니다. 그는 자동차의 고장을 간단히 수리했습니다. 고장난 자동차 주인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쉽게 고칠 수 있습니까?” 그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이 자동차는 제가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 쉽게 고치지요.” 그는 자동차 왕 포드였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라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도움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유일한 도움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역사하셔서 나의 일을 도울 수 있는 사람도 보내 주시고 나의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주십니다. 이 순서를 바꾸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보통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 나의 길을 바꿔 줄 수 있는 사람을 먼저 찾고 그다음에 하나님을 구합니다. "하나님 여기 좋은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어딘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그 기도가 잘못된 이유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먼저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먼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를 구하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행하는 일을 보라."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애굽을 탈출하던 이스라엘 백성 앞에 홍해가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홍해를 어떻게 건널 수 있을까요? 200만 명이 홍해를 건너기 위해서는 20명씩 타는 배 10만척이 필요합니다. 10만 척의 배를 어디 가서 구할까요? 하나님, 배를 동원해 주셔야겠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생각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행하는 일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모세에게 네 지팡이로 홍해를 가리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홍해가 쫙 갈라지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건널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는 영적 통찰

여러분 우리는 생각의 순서를 바꿔야 합니다. 홍해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태우려면 20 명씩 타는 배를 가져오려면 20만 척이 필요하고, 거기에 낙타와 양과 모든 짐을 다 실으려면 또 그만큼의 배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 배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요? "주님 배를 준비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면 그 기도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지금 우리의 기도가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먼저 여러분의 모든 사정을 말씀드리고 "하나님 이런 상황에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려 하십니까?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하며 ‘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리라’ 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보려고 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위에서 비가 내리기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관찰을 했습니다. 자기 종을 보내어 "가서 바다의 하늘을 보고 와라." 사환은 가서 보고 와서 얘기해 줍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냐?“ 그는 다시 기도합니다. 그리고 사환을 또 보냅니다. "가서 보고 와라."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냐?” 그는 또 기도하합니다. 사환을 보낸 지 일곱 번 만에 드디어 사환이 와서 하는 말이 "손바닥만 한 구름 하나가 떴습니다"라고 합니다. "됐다. 큰 비가 내릴 터이니 속히 내려가자." 여러분, 손바닥만 한 구름이 떴는데 큰 비가 내린다고 이야기하면서 속히 산에서 내려가자고 합니다. 그리고 아합 왕에게 말했더니 왕도 선지자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빨리 달려 내려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우리의 도움인 줄 믿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길을 주실지 어떻게 인도하실지는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볼 수 있는 영적 눈이 있어야 합니다. 손바닥만 한 구름을 사환이 가서 보았을 때 그는 손바닥만 한 구름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야 선지자는 손바닥만한 구름을 하나님의 크신 역사라고 믿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영적 통찰이 있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십시오. 여러분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신다면 여러분은 정말 흥미진진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 관찰되는데 그때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기대와 소망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삶은 정말 흥미진진한 삶이 될 것이고 정말 기대가 충만하여 이것이 이루어지는 삶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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