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시는 하나님(5))_영원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시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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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7-19본문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5)
영원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시 121:8)
삶의 전망(展望)에서 언은 깨달음
이 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삶에 대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그는 눈앞에 보이는 이 험준한 산맥을 넘어 하나님의 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신 영광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길, 그 여정에는 수없이 많은 산이 있어 고비고비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그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길을 가는 것은 만만치 않습니다. 그는 그 길을 내다보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전망이라고 말합니다. 전망이란 멀리 내다보는 것이고, 넓게 살펴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전망대 같은 곳이 있지요. 전망대는 높은 곳에서 전체를 내려다보는 곳입니다. 전체를 내려다보면 “아, 과연 이 모습이 이렇구나” 하며 정리가 됩니다. 평소에 지나다니며 높아 보였던 빌딩들이 위에서 보면 얼마나 작게 보이는지, 또 그 빌딩 사이의 도로가 얼마나 가늘게 보이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길을 다니며 힘들고 어렵다고 신음하던 우리는, 알고 보면 마치 개미처럼 땅바닥에 붙어 살아온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 전망대에 올라가니 그 모든 삶이 정말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전망한다”는 말은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삶에 임하는 태도까지 바꿔 놓는다는 뜻입니다. 시인은 지금 하나님의 산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 전체를 하나하나 자세히 살피고 있습니다. 그 여정에는 난관과 어려움, 그리고 위험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시인은 몇 가지를 구체적으로 열거합니다. 먼저 실족의 위험입니다. 멀쩡히 가다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발목이 다치든지, 안면이 다치든지 결국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실족의 위험은 육체적인 실족일 수도 있고 영적인 실족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실족의 위험으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인은 그 여정을 전망하며, 낮의 해와 밤의 달이 주는 위험 또한 언급합니다. 낮의 해와 밤의 달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현상들입니다. 그런데도 그것들이 우리에게는 때로 해가, 즉 올무가 되기도 합니다. 일상생활을 멀쩡히 잘 이어 가다가도, 어느 순간 그 일이 오히려 우리를 걸려 넘어뜨리는 올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역경 속에서도 용기를 주는 하나님의 보호
낮의 해가 언제 우리를 해칠지 모르며 밤의 달도 언제 우리를 해칠지 모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이며,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어려움이 분명히 있을 것임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때로는 환난이 찾아오고, 예측할 수 없는 기후로 말미암아 바람과 비가 몰아치면 그 여정은 더욱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길을 정상적으로 갈 수 있을까요? 시인은 이 모든 일을 전망한 후 마음속에 결론을 내립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역사하시면 갈 수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인의 묵상이며 시인의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며, 그들의 삶을 눈동자처럼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낮에는 해가, 밤에는 달이 해치지 못하도록 낮에도 졸지 아니하시고 밤에도 주무시지 않으시며, 친히 백성을 지키십니다. 낮에는 그늘을 드리워 해로부터 보호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추위를 막아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 곧 생명 전체를 지키시는 분입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며, 여정 동안 함께하시고 역사하신다면 우리는 능히 그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인의 믿음이며, 그 고백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신다면, 실족할 위험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낮의 해와 밤의 달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든 환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면, 하나님이 나를 지키신다면, 과연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정말 나를 지켜 주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고, 친한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마다 자신의 삶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수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난관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이 모든 것을 능히 이기게 합니다.
우리의 출입을 영원까지 지키시는 약속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21편 8절의 말씀은 이 모든 사실들을 한데 모아 영광스럽게 결론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출입이라고 하는 것은 공간적인 개념이지요.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면서 항상 집을 나갔다 들어오는 삶을 살고 있어요. 날마다 이렇게 살아갑니다. 평소 우리의 생활 패턴은 거의 비슷하죠.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들어오는 삶을 삽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비유할 때 출입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이 출입의 삶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일터로 나가십니까? 그렇다면 일터의 삶을 지키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직장 생활을 하거나 무슨 사업을 하거나 이런 모든 현장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당신이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학생이십니까? 그렇다면 학업하는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출입을 지켜 주신다는 이 믿음이 우리를 지켜 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거예요.
얼굴을 도우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전에 제가 시편 42편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았을 때, 내 얼굴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기뻐하곤 했습니다. 그 은혜를 받던 대학 시절에는 아침에 거울을 보면서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오늘도 제 얼굴을 도우실 줄 믿습니다.” 어떤 말씀이 마음을 감동시키고,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밖으로 나가기 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의 얼굴을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내 얼굴을 도우시며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데, 무엇이 두려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하나님께서 내게 역사하실 것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삶에 분명히 역사하시고, 나의 출입과 오늘의 삶 속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하루하루가 쌓여 우리의 생애가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시간 속에서 우리에게 역사하신다는 뜻입니다. 공간 속에서, 그리고 지금이라는 이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그 역사가 쌓여 우리의 삶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생애 전부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 아래에 있었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의 고난을 이기는 영원한 소망
더 나아가 시인은 영원까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영원에 대한 소망으로, 현재의 고난과 고통 속에서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로마서 8장 18절을 보면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이 땅을 살면서 겪는 많은 어려움도 있지만, 더욱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께 사명을 받은 자로 살아가는 삶에서 겪는 고난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 겪는 수많은 난관들이 있으며, 이런 일들은 때로 마음을 아프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에게 주실 것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믿음이요, 경건한 성도들의 믿음이며, 오늘 시편 121편 시인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속에서 이 땅의 모든 것들을 다 보상해 주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을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지 않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도 많고, 양보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주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서는 때로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위험도 감수해야 합니다. 주님 뜻대로 살다가 오해를 받고 사람들에게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정말 견딜 수 없는 순간들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출입을 지키시며 영원까지 우리의 출입을 지키실 것입니다.
연단을 통해 강해지는 성도의 삶
현재의 고난은 비록 힘들고 어렵겠지만, 거룩한 연단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연단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더욱 순결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여러분, 쇠로 어떤 도구를 만들 때 연단을 많이 할수록 더 강력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연단을 거의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쉽게 부러집니다. 쇠를 그대로 녹여 쇳물을 틀에 맞춰 놓기만 하면 어떻게 될까요? 모양은 그럴듯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쉽게 부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쉽게 구부러지고 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연단하지 않은 쇠는 가치가 없습니다, 여러분. 좋은 쇠는 무엇일까요? 연단을 많이 한 쇠입니다. 연단을 많이 한 쇠 말입니다. 옛날에는 이 연단을 하기 위해 쇠를 계속 두드렸습니다. 망치로 계속 두드립니다. 그리고 다시 이 풀무불에 넣어 벌겋게 달군 다음 또 두드립니다. 모양을 내기 위해 두드리는 경우도 있지만, 쇠를 단련시키기 위해 두드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정말 제대로 된 좋은 도구를 만들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쇠는 그렇게 많이 두드리지 않습니다. 그냥 모양만 만듭니다. 그러나 제대로 쓸 도구를 만들 때에는 수없이 쇠를 망치질합니다. 쇠를 다시 접어서 또 두드리고, 또 접어서 두드리고, 또 접어서 두드려 펴고, 또 접어서 두드려 펴는 작업을 계속하다 보면 나중에는 쇠가 수십 겹으로 접힌 쇠가 됩니다. 수십 겹을 접었는데도 두께는 똑같습니다. 연단하지 않은 쇠나 수십 겹으로 접은 쇠나 두께는 똑같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쇠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을 가장 두려워한 신앙
종교 개혁자 존 칼빈은 1536년 제네바에서 첫 사역을 시작했으나, 개혁의 강도를 부담스러워한 성도들에 의해 2년 만에 추방당했습니다. 이후 스트라스부르에서 안정을 찾았던 그는 제네바의 긴급한 재요청을 받았지만, 과거의 고통 때문에 돌아가기를 극도로 꺼렸습니다. 그러나 동료 파렐은 "네가 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너의 길을 인도하지 않으실 것"이라며 그를 설득했습니다. 칼빈은 사역의 고통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끊기는 것'을 더 두려워하여 마침내 제네바로 돌아가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는 이때 "내 심장을 주께 드리나이다"라는 고백과 함께, 손이 심장을 쥐고 하늘의 빛을 받는 모습의 도장을 새겼습니다. 칼빈은 평생 무슨 일을 하든 이 도장을 찍으며, 자신의 심장을 하나님께 신속하고 신실하게 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제네바 제2기 사역은 큰 축복을 받아 유럽 종교 개혁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그 모든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하나님이 나를 떠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시고 인도하지 않으시는 것이 가장 무서운 일입니다. 여러분에게 정말 무서운 것은 무엇입니까? 칼빈은 주님을 누구보다 두려워했고,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는 것을 이 땅의 그 어떤 것보다도 두려워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 평생을 살았으며, 이를 도장에 새겨 늘 그 도장을 찍으면서 '나의 심장을 다하여 주께 드리나이다'라고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았던 그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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