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라(3)_가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라(창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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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8-15본문
모든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라(3)
가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라(창 12:5-9)
어떤 상황에서든 예배를 포기하지 말라
우리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쉽게 합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양보할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고 힘이 쇠하여지면 예배에 힘쓰지 않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라도 예배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목회 초년 시절에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 가정에 심방을 갔는데, 노인 한 분이 교회를 나오시다가 중풍으로 자리에 누워 계신 상황이었습니다. 가족 중에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그분은 홀로 안타까워하고만 있었습니다. 함께 찬양하고 예배를 드렸더니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마음속에 깊은 안타까움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분을 도울 수 있는 방도가 없었습니다. 자주 찾아가서 함께 예배드리는 것 외에는 달리 길이 없었고, 그분을 교회로 모셔 오는 일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중풍이 오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는 것이구나.'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물론 혼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상에 누운 상태에서 믿음과 정신이 강하지 않으면, 혼자서 예배를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흐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것이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정신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병원이나 요양원에 오래 있으면 날짜도, 시간도 감각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감각을 잃게 되면 정신 세계가 무너집니다. 어느 날이나 똑같이 반복되어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그의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시간이 흘러가도록 놓아두어서는 안 됩니다. 폰에 일정을 만들어 그 시간에 알림이 오도록 하십시오.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은 아브라함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삶 속에서도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순간부터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며 예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삶의 모범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교과서입니다. 아브라함은 본래 정착민이었습니다.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있는 우르에서 도시민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그 길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의 여정도, 그 땅에 도착한 이후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삶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당시는 신이라면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신 개념이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들어왔으나, 그 땅의 신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백성들이 조상 대대로 섬겨 온 지역신을 거부하고, 새로운 땅에서도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곳에서 아브라함을 만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역신이라면 다른 지역에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 세계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세계의 모든 것이 그분의 것입니다.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은 어디에서나 자기 백성을 만나십니다. 아브라함은 새로운 땅에서 그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약속하셨던 말씀을 다시 들려 주셨습니다.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그는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 앞에 경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
우리의 하나님은 장소에 매이는 분이 아닙니다. 어디에나 계시며, 어디에서나 자기 백성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곳이라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먼 곳이라고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전에 말씀하셨고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그 언약은 지금도 이곳에서 여전히 유효합니다.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예배를 드렸다는 것은, 그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고, 그것을 믿음으로 붙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만남과 확인이 있었기에 그는 매번 용기 있게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예배는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겠으나, 가장 기본적으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약속과 사랑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시구나.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변치 아니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구나'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 확인이 마음속에 기쁨과 즐거움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예배가 과연 그러합니까? 예배 의식에 참여하여 '한 번 했구나'라고 표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만난 감격과 기쁨, 그분의 약속과 사랑의 확인이 실제로 우리 영혼 속에서 일어나고 있어야 합니다. 예배는 살아 있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신약 성도에게 주어진 더 크고 놀라운 약속
우리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영광스러운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복음 전도의 명령으로만 이해하지만, 그 본질은 이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은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노래할지어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온 땅이여'는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가나안이라는 한 지역이 주어졌지만, 신약 성도들에게는 전 세계가 예배의 영역으로 주어졌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명령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도, 제자 삼는 일도, 구원도 — 그 모든 것의 최종 귀착점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하고 분명한 일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중풍병자와 예배 — 두 가지 장면
우리에게도 언젠가 건강이 쇠하여 예배가 자유롭지 못한 순간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그때를 위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두어야 합니다. 그런 상황을 당한 뒤에 '왜 하나님께서 나를 이런 상황에 처하게 하셨느냐'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각오를 세워 두어야 합니다. 목회 초년 시절에 보았던 중풍 환자와 대조적인 장면을 이후에 목격하였습니다. 다른 교회에 갔을 때, 그 교회의 장로님이 중풍을 앓고 계셨는데, 주일마다 가족이 총동원되어 그분을 교회로 모셔 왔습니다. 부인과 아들 둘이서 아버지를 부축하여, 휠체어가 아닌 두 발로 계단을 오르게 하였습니다. 한 발 한 발 발을 딛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렸지만, 가족들은 매 주일 그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그 모습을 부끄럽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아오는 그 걸음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겠습니까. 장로님은 오히려 기뻐하셨고, 가족들의 격려 소리에, 성도들의 응원에 더욱 힘을 내어 한 발 한 발 나아가셨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중풍병자도 하나님 앞에 매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구나.' 그리고 그것이 이미 성경에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메고 예수님께 왔고, 무리 때문에 들어갈 수 없자 지붕을 뜯어 그를 달아내렸습니다. 그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는 주님을 만날 수 있었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이미 답이 있었으나 내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 장로님과 그 가족은 성경의 그 원리를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그분의 존재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대학 교수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던 삶에서 갑자기 병상에 누운 그 충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에게 반드시 해야만 하는 단 한 가지가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배의 부흥을 향하여
자녀가 있다면, 부모님이 거동이 불편한 상황에 있더라도 그분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도우십시오. 예배는 우리 존재를 영광스럽게 하고, 삶을 복되고 아름답게 하며, 영혼에 참된 기쁨을 줍니다.
최근에 저는 우리 교회를 위하여 네 가지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적 사명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큰 물음 아래,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첫째, 생명의 부흥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여 말씀의 은혜와 능력이 나타나고, 병든 자가 고침받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방황하는 자들이 새 삶을 시작하고, 잠든 영혼들이 깨어나는 생명의 부흥이 이곳에서 시작되어 우리 시대와 이 땅을 살리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영광스러운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에 찾아오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는 그 언약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아 영혼이 살아나는 예배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이 교회의 예배가 우리 시대 모든 교회의 예배를 살리는 예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다음 세대를 섬기는 은혜입니다. 다음 세대 영혼들을 보내 주시고, 우리가 그들의 마음에 진리를 가르쳐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넷째, 복음의 능력입니다.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교회 안에서 복음이 선명하게 선포되고, 그 복음이 사람에게 실제로 역사하여 새 생명이 탄생하고 죽은 영혼이 살아나기를 기도합니다. 생명을 체험하지 못하면 이 시대의 물살에 떠내려가고 맙니다. 이 시대를 거스르는 일은 오직 생명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천이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의 부흥은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예배가 우리의 생명이 되어야 하고, '예배가 없으면 나도 없다'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며,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라
제가 아는 목사님은 대학을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강력한 무슬림 국가로서 외국인에게도 예배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교 경찰의 단속으로 예배 장소를 찾을 수 없자, '피크닉'을 명목으로 회사에 버스를 신청하여 사막으로 나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래전 호주 퍼스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항구 도시의 해변에 섰을 때 안내자가 "목사님, 저 앞이 인도양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지도에서만 보던 인도양이 눈앞에 펼쳐지자 마음에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일본 벳푸에서도 바닷가에 섰을 때 "저 앞이 태평양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같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햇빛이 닿는 곳마다 주 예수 왕이 되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삶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순간이 되어야 하고, 어디를 가든 예배자로 서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듯이, 우리가 있는 모든 곳이 예배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을 예배할 길을 찾으십시오. 치열하게, 간절하게 그 길을 구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예배 속에서 우리를 만나시고, 영혼에 생수를 주시며, 우리의 삶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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