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왕권을 높이라(01)_무너진 세계와 그리스도의 왕권 (골 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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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9-22

본문

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왕권을 높이라(01)

무너진 세계와 그리스도의 왕권 (골 1:15-18)



헤르만 바빙크와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앙과 시대적 과제

이번 휴가 기간 동안 헤르만 바빙크와 아브라함 카이퍼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저작 가운데 잘 알려진 것으로는 《칼빈주의 강연》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칼빈주의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삶의 근본 원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헤르만 바빙크는 자기 시대에 대학에서 신학과 신앙의 확신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을 두고 고민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자기 시대의 도전으로 받아들였고, 이를 이겨 내는 것을 시대적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과학적 지식은 학문으로 인정하면서도, 신학은 학문이 아니므로 대학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신학자들은 그런 주장에 영합하기 위해 신학을 성경 연구로, 또 성경 연구를 역사적 자료 연구로 맞추어 갔습니다. 바빙크의 《신앙의 확신》은 이러한 역사적 현실 속에서 신앙의 확신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신학이 대학 안에 존재하기 위해 현대인들의 주장에 영합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성경을 선택적으로 취사선택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취사선택하는 그 과정을 학문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신앙이 완전히 변질된 것입니다.


무너진 세계와 현대인의 불안

오늘 말씀의 제목은 “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왕권을 높이라”입니다. 오늘 첫 번째 메시지는 “무너진 세계와 그리스도의 왕권”입니다. 무너진 세계란, 현대인들이 18세기와 19세기를 지나오면서 근대 철학의 영향을 받고 근대 학문의 도전을 받는 가운데, 그 학문에 영합하며 신학과 신앙이 변질되어 온 현실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지금은 대중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그런 주장들을 대학에서 교수들이나 학자들만 이야기하던 시대였다면, 지금은 그런 복잡한 학문을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아도 대중들 역시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시대입니다. 사고방식 자체가 그렇게 형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 말씀 앞에 무릎 꿇지 않는 것이 현대의 상황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회를, 지금 이런 상황을 무너진 세계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무너진 세계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엇입니까? 무너진 세계에서 일어난 일은 하나님의 권위를 밀어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학문의 세계에서 밀어냈고, 삶의 세계에서도 밀어냈습니다.


전통적 가치의 붕괴

하나님을 밀어낸 결과, 인간의 삶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유행하고 있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내 인생은 내가 주인이다.” “네 인생은 너의 것이다. 네가 인생의 주체이고, 너는 독립된 주체자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될까요? 인기 있는 강사가 내세우는 주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당신은 주체자입니다.” 이 주장은 듣기에는 한 개인의 독립성을 키워 주고 삶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는 아주 좋은 교훈처럼 보입니다. 어떤 청년이 이 강사에게 상담을 했습니다. “우리 집안은 어려운 집안인데 부모님들이 저에게 기대가 큽니다. 그런데 저는 부모님들이 자기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 너무나 부담스럽습니다. 부모님들은 제가 빨리 취직해서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기를 바라시고, 제가 취직해서 돈을 벌어 오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이에 대해 그는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의 삶을 경제적으로 책임지는 일은 옳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부모 공경이라는 것 자체가 자녀를 부모에게 종속시켜 자녀의 독립성을 해치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따를 필요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너는 자유로운 존재다!” 이 청년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뒤에 그 청년과 그 가정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 강사는 한 청년을 무너뜨리고, 그 청년과 함께 그 부모와 그 가정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르침이 버젓이 횡행하고 있는 시대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입니다. 지금 우리는 무너진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이런 일들이 비롯되었을까요? 근대 이후 인간은 주체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인간을 높이는 사상을 발전시켰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인생들이 가는 길은 결국 불안입니다. 인간은 불안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그 불안 때문에 인간은 설명할 수 없는,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합니다. 이 불안은 인간 존재에 속하는 것이다. 이건 탓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온갖 종류의 부조리, 불합리를 긍정하고 "다 괜찮다"는 식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우리는 무너진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리스도의 탁월하심

오늘 우리가 읽은 골로새서 1장 15절부터 18절까지는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을 이야기할 때 이어지는 문맥의 흐름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기도하고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를 위해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라고 하며 기도 제목을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기도 제목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옵소서”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필요합니다. 나도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가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 자라기 위해서는 단지 어떤 지식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지식을 삶으로 실천하는 삶의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식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에 자라게 하옵소서. 이를 위해서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하나님을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실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까? 그렇다면 아멘.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는 이야기입니까? 기쁘게 순종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야 성장이 일어납니다. 셋째로 기도는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게 하옵소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능력, 곧 모든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어디에 사용하는가 하면, 견뎌내는 데와 오래 참음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견뎌내고 오래 참는 것, 이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견뎌내고 오래 참음이 사라진 시대, 그것이 오늘 성도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신 은혜에 근거한 기도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을 위하여 행해 주신 일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크게 두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는 어둠의 권세에서 그분이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것입니다. 즉 법의 권세, 그 권세자가 미치는 영역을 완전히 바꾸어 놓으신 것입니다. 나라를 바꾸신 거죠. 그러면 법이 바뀌는 것입니다. 어둠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절망의 나라에서 소망의 나라로, 사망의 나라에서 생명의 나라로 옮겨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일을 행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죄 사함입니다. 죄 사함, 곧 속량을 받아 죄 사함을 얻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고 나라가 바뀐 것입니다. 이 일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이미 행하신 일입니다.


만물의 창조자이자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어떤 분입니까?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은 창조하신 이 세계를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 때문에 이 세상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이 세상이 창조되고 보존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이 삶은 나 때문에가 아니라 그리스도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 확신이 우리에게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할까요? 내가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책임은 내게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존하십니다. 내가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의 보존자이시며, 그분이 나의 삶의 바탕을 이루는 분이십니다. 그 일을 이분이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분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시며, 만물의 창조자이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자이시며, 만물의 보존자이십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교회만의 그리스도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도의 진술은 온 세상 만물의 창조, 보존, 통치자로서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교회 안에서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만 예수님이 의미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창조자이십니다. 이 만물을 보존하시고 통치하시는 권세자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우리로서는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입으신 것입니다. 교회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분이 어떤 분이십니까?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고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갈 때 그리스도를 그곳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가 교회 안에서만 계신다면 우리는 밖에 나가면 그리스도 없이 살게 됩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까 그리스도는 어떤 분입니까? 세상의 창조자요, 보존자요, 통치자입니다. 그분은 교회 안에서 교회의 머리이시지만 이미 그전에 세상의 창조자, 보존자, 통치자였습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왕권을 높이라

우리는 교회에서만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삶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리스도는 이미 왕이십니다. 그분은 이 땅의 모든 것을 만드신 분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 모든 사회를 만드신 분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삶의 원리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지만, 알고 보면 그분은 교회 밖에서도 이미 이 세상의 창조자요 보존자요 통치자로 계셨던 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삶에 예수님이 필수적이라면, 교회 밖의 삶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필수적인 분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 밖에서도 우리의 통치자로서 우리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분이십니다. 이것을 알아야 무너진 세상을 우리가 다시 회복하고 그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교회 안에서의 삶과 교회 밖에서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모든 만물은 그분에게서 비롯되어 그분을 근거로 살아가며, 그분이 만물의 통치자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일반 교회 밖의 삶 속에서도 우리의 왕이시라고 고백해야 하며, 그리스도는 우리만의 왕이 아니라 이 세상의 왕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확신입니다. 이 확신이 무너지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삶의 현장에서 신앙을 포기한 채 물러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지난 300년 동안 진행되어 온 역사의 모습입니다. 대학에서도 점점 도피해야 했고, 모든 공적 영역에서도 도피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이 그리스도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그곳도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곳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설교 초에 말씀드렸던 아브라함 카이퍼나 헤르만 바빙크는 바로 공적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포기하는 사회 풍토, 교회의 풍조 속에서 이런 역사를 이겨 내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시대를 바꾸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시대에도 이와 같은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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