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왕권을 높이라(03)_구속 받은 자의 문화사명 (고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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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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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왕권을 높이라(03)

구속 받은 자의 문화사명 (고후 5:17)



아브라함 카이퍼의 평생 소원

지난주에 우리는 아브라함 카이퍼가 젊은 시절 세 차례의 체험을 통해 자유주의 사상에 물들었던 청년이 칼빈주의의 성경적 세계관을 받아들여, 복음의 은혜와 능력으로 변화된 심령이 되어 자신의 전 생애를 하나님의 나라와 말씀의 통치를 이루는 일에 헌신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믿음으로 의로움을 발견하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 생활의 토대를 드러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거룩한 규례가 사회에 나타나는 모든 인간 실존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성경을 통해서 구원의 도리를 깨닫고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가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 가운데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모든 인간 생활의 토대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거룩한 규례가 인간 세상과 인간 삶의 모든 부분을 다스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두 가지 일을 했습니다. 하나는 구원의 일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통치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양한 영역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목회자이자 대학 교수였으며,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자유대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또한 언론인으로서 평생을 사역했고, 하원의원과 정당 창설자로서 정치 활동도 했습니다. 한 국가의 수상을 두 번이나 역임하며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모든 책임을 감당했고, 엄청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시대정신과의 싸움

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던 오직 한 가지 소원은 무엇이었겠습니까? 1887년 《드 스탠다르트》라는 일간지에서 편집장을 25년 동안 역임하고 기념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의 평생에 열망하던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나의 마음과 영혼의 박차를 가하게 하는 높은 동기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규례가 가정과 학교와 국가에 다시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규례가 가정과 학교와 국가에 다시 세워져야 합니다. 다시 세워져야 한다는 것은 그 모든 일들이 지금은 무너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무너진 것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 카이퍼의 마음속에 있었고, 그는 이 일을 마음의 소망으로 삼아 평생 동안 헌신했습니다. 즉 성경과 창조계가 증거하는 주님의 규례가 백성들의 마음에 다시 역사하여 백성들이 다시금 하나님께 충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규례로 다시금 그 마음이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의 거룩한 규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 카이퍼가 평생 동안 추구했던 삶이었으며, 그 일에 참 많이 헌신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시대정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시대정신은 마치 홍수처럼 아주 도도하게 흘러갑니다. 지금은 이것이 일시적인 홍수가 아니라 지속적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홍수는 한 차례 밀려간 뒤 그치지만, 지금 우리는 현대사상의 홍수 속에 머물지 않고 그것이 강물을 이루어 도도하게 흘러가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강물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며, 많은 사람이 함께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전망하며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할 때 참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 자기 시대의 시대정신과 싸웠던 이들의 사상과 생애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헤르만 바빙크와 하나님의 주권 사상

헤르만 바빙크 역시 동일한 시대의 사람입니다. 그는 또한 동일한 시대정신의 어려움을 겪고 그 시대를 이겨 나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네덜란드라는 나라가 완전히 자유주의 사상으로 변해 버린 상황 속에서 이를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때 이들이 내세운 두 가지 큰 사상 중 하나는 하나님의 주권 사상입니다. 제가 첫 번째 메시지에서 그리스도의 왕권을 높여야 한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서 우리의 왕이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 만물과 창조 세계를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그분은 십자가의 구속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지극히 높이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것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피조물이 그분 앞에 무릎을 꿇으며 그분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곧 모든 세계를 통치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참된 통치자이심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통치를 믿는 우리는 교회 안뿐만 아니라 교회 밖의 모든 영역도 그리스도의 통치 영역임을 분명히 알고, 그 통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 사상입니다. 바빙크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특별히 강조했습니다. 그 통치는 교회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교회 밖의 모든 세계에 미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일반적인 은혜 혹은 은총이라고 부릅니다. 교회 안에 임하는 특별한 은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교회 밖에 미치는 하나님의 은혜는 은총이라고 부릅니다.


일반 은총과 문화의 타락

그 은총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학문 활동을 하고 문화를 건설하지만, 그들 속에 믿음이 없으므로 이 문화 활동과 지식의 세계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사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을 부인하는 학문을 세워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세계가 이러한 학문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대학 안에서만 영향을 미쳤지만, 이제는 대중적으로 어린아이들에게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문화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학문의 세계에서만 논의되던 내용들이 학자들과 배운 이들의 전유물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일반 사람들에게 확산되었습니다. 이것이 삶의 모습으로 자리 잡으면서 어린아이들까지도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이들에게 믿음과 경건한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생명의 역사, 중생의 필요

우리의 자녀들은 배우지 않아도 세상의 정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믿음을 가르치는 일이 마치 수학 공부처럼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습득되던 믿음이 이제는 어려운 과목을 가르치는 것처럼 여겨지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인지 모릅니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문화 명령과 그에 따른 사명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늘에서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애초에 우리는 그렇게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학교에서 과목을 배워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이 역사하여 우리의 영혼이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변화되면 그때부터 믿음은 수학이 아니라 삶이 됩니다. 이러한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특별한 은혜의 역사가 주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생명 사역이며, 우리는 이를 중생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때 비로소 신앙이 세워지고 정신세계와 사상이 올바르게 정립될 수 있습니다. 중생하지 않으면 이러한 기회는 없습니다.


AI 시대와 신앙의 본질

이번 주에 시찰회 목사님들과 함께 AI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신앙과 교회는 어떻게 될까요?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마주한 젊은 목사님들 사이에서 20년 후의 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상태, 그리고 다음 세대 교육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AI로 교회의 많은 것들을 꾸밀 수 있습니다. 찬송이나 가스펠송을 AI로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생명이 임해야 합니다. 생명이 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언제나 생명이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교회는 생명이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임하고 성령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여 중생의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만이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으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생명이자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만 역사하실 뿐 아니라 일반 세계를 보존하기 위해 은혜로 임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 그리고 생명의 나타남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자유대학의 변질이 주는 교훈

아브라함 카이퍼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자유대학을 설립했습니다. 그 대학은 세계적인 명문으로 규모도 대단히 큽니다. 그러나 그 대학은 현재 아브라함 카이퍼가 소망했던 모습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그 신학부에 헤르만 바빙크가 조직신학 교수로 있었고, 현재는 그의 대를 이은 교수가 학과장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신학부는 모든 종교 학부로 바뀌었습니다. 신학이 기독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를 포괄하는 학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학자들뿐만 아니라 이슬람의 이맘과 학자들도 함께 존재합니다. 이는 마치 우리 군대의 군종 제도가 기독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등 여러 종파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둔 것과 비슷합니다. 스님이 상관이 되어 명령을 내릴 수도 있는 구조가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설립한 대학 역시 이런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모든 종교가 들어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공립대학으로서 모든 종교를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명목 아래 이를 막을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들이 연구하는 내용은 기독교 신학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설립 이념이 사라지고, 그때의 뜨거운 열정과 정신을 지켜 나갈 사람들이 사라지면 내부적으로 모든 것이 변하게 됩니다. 겉모양은 그대로이지만 설립자의 동상이 세워져 있어도 본질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모습입니다. 이를 어떻게 바꿀 수 있겠습니까? 다시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의 역사를 체험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안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의 사명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시대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은혜를 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를 잘 세우고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버리거나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이 책임이 주어져 있으며, 우리는 이것을 사명이라고 부릅니다. 이 사명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다음 세대를 양육한다고 할 때 단순히 주일학교에 출석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이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삶의 모든 영역에서 드러내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을 감당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하늘에서 내리시는 성령의 역사와 생명의 능력에 있습니다. 생명의 능력이 없으면 이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능력을 얻은 이들이 나아가 그 일을 감당합니다. 생명의 능력이 없으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교회 안으로, 더 깊은 곳으로 숨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생명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있어야만 사명을 올바르게 감당하고 마침내 승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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