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왕권을 높이라(05)_세상을 바꿀 새로운 인류 (요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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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10-22본문
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왕권을 높이라(05)
세상을 바꿀 새로운 인류 (요 3:3-8)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
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왕권을 높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다섯 번째 시간으로, "세상을 바꿀 새로운 인류"라는 제목 아래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의 여러 상황이 교회와 복음 전파에 불리하게 전개되면서 많은 분들이 염려하고 근심하는 가운데, 어느 날 주님께서 "이 나라도 내가 통치하는 곳이다"라는 깨달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며 염려하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이곳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자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더욱 적극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곳입니다. 인간이 비록 타락하였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버리신 적은 없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이 세상에는 여러 문제가 생겨난 것이 사실입니다. 땅은 사람이 농사할 때 순순히 열매를 내어 주지 않고, 기후는 해마다 달라져 수확에 차이가 생기며, 재난이 닥치면 평소에 거두던 생산조차 이루지 못해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일도 벌어집니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이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로 보존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땅은 소산을 내고 하늘은 비를 내려 우리의 삶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일반 은총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비를 내리시고 햇볕을 비추어 주시며, 이 땅에서의 삶이 계속될 수 있도록 돌보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일반 은총과 그 한계 — 문화의 발전과 왜곡
인간은 타락한 이후에도 그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짐승과는 구별되는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 다음 세대에 전수하며 끊임없이 발전시켜 왔습니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추론 능력과 상상력인데, 인간은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문화를 발전시키고 상징이라는 방식을 통해 후대에 학문을 전해 줍니다. 또한 그렇게 선배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더 멀리 내다보며, 이전보다 더 큰 발전을 이루어 온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것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일반 은총에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여 에덴에서 쫓겨난 뒤 자연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고, 자연은 때로는 고요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때로는 태풍과 폭풍, 쓰나미와 지진 같은 수많은 재난으로 인간의 삶을 위협합니다. 인간의 육신 또한 노화와 질병에 점점 쇠약해져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제한된 자연을 활용하는 인간 자신에게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완전하지 않으며, 그 불완전함은 특히 생각의 방향을 정하는 능력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인간은 정신 세계를 지니고 있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지만, 바로 그 활용의 방향이 문제입니다. 방향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가 버리게 되며, 이것이 결국 타락으로 이어지는 왜곡입니다. 청소년기에 힘이 생겼을 때 그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생각이 바르지 않으면, 그 힘은 약한 자를 괴롭히는 데 쓰이게 됩니다. 공부를 잘해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도 생각의 방향이 잘못되면 그 뛰어난 지적 능력을 부정과 부패에 사용하게 됩니다. 능력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방향이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핵무기의 발달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자력의 발견은 원래 인류의 삶에 많은 이익을 줄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생각의 방향이 잘못된 인간들이 이를 대량 파괴 무기로 전용하면서 인류 멸망의 위협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문화가 발달할수록 그것을 잘못된 방향으로 활용하는 인간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근본 문제는 생각의 방향 — 타락한 인간의 본질
세상은 지금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고, 앞으로는 그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더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변화가 이어질 것입니다. 세상의 문화와 문명이 발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발전은 언제나 새로운 문제를 함께 불러옵니다. 만드는 사람에게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도 문제는 생겨납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활용되는 일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생각의 방향이 잘못된 데 있습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생각의 방향이 왜곡되었고, 이 문제를 바로잡지 않으면 해결의 길은 없습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면, 무엇보다 사람의 생각하는 방향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이 바로 이 부분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침을 줍니다.
하나님의 해법 — 새로운 인류의 탄생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실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키셨습니다. 생각과 삶의 방향이 달라진 사람들, 다시 말해 이 세상을 변화시킬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이 강조하는 핵심입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될 권세를 받은 자들이며, 그들이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간다는 사실, 바로 이것이 요한복음이 선포하는 새로운 시대의 모습입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던 사람이었지만, 아직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가 “내가 늙었는데 다시 어떻게 어머니 태속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주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8절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성령으로 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룹니다. 우리는 이것을 중생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단순한 영적 체험이 아니라, 우리 영혼이 살아나는 결정적인 사건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사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중생한 사람의 특징 — 생각의 방향이 바뀐다
중생한 사람에게는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은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마음을 새롭게 함’은 단순히 감정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지성과 생각의 방향이 새로워지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생각의 기준과 흐름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 그 힘을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데 사용한다면, 그것은 옳은 생각이 아닙니다. 무엇이 바뀌어야 합니까?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렇게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고 새롭게 만드는 하나님의 방법이 바로 중생입니다. 그렇다면 이 생각의 방향은 어디를 향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은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기준이 되셔야 합니다. 저급한 동물적 본능에서 나오는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근거한 생각으로 방향이 전환되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0절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합니다.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를 가리킵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이 왜곡되었지만, 중생을 통해 새 사람, 곧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얻게 됩니다. 세상이 전부라고 여겼던 사람이 중생하면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며,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가 있다는 영적 지식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생각의 방향이 바뀌고 삶도 달라집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생각은 제대로 변하지 않는 일이 생깁니다. 사상이 변하지 않으면 교회 안에서는 문제를 일으키고, 사회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보여 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상은 반드시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상이 변화된 사람의 실례
이러한 사상의 변화가 한 사람의 생애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바꾸는지를 아브라함 카이퍼의 삶은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는 처음에는 자유주의 사상을 지닌 사람이었고, 그 시대는 바로 그러한 자유주의 사상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 차례에 걸친 중대한 계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이 점차 달라지는 과정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체험하고, 영적인 회심을 겪고, 목회 현장에서 복음의 실체를 깨달으면서 그의 삶 전체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가 이전에 배웠던 모든 학문은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유익한 도구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던 시대를 뒤흔드는 여러 일들을 평생의 과제로 받아들이며 감당했고, 마침내 세계 3대 칼빈주의자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상이 변화된 한 사람이 한 시대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그의 생애가 분명한 증거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상이 변화된 사람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이 세상의 사상과 가치관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직접 경험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흐름에 무심히 떠밀려 갈 것이 아니라, 사상이 변하고 가치관이 흔들릴수록 교회와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바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세상의 변화 속에서도 교회가 점점 더 세상에 밀려 약화되고, 그 영향력이 줄어드는 일이 하나님의 뜻인지 계획인지 스스로에게 분명히 물으며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 역시 교회 안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며 나아갈 때,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우리를 통해 세상도 변화될 것입니다. 모든 민족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신 것도 모든 민족이 그 통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통치를 믿는 사람들은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승리자가 되는 길을 향해 담대히 나아갑니다.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교회, 곧 세상을 향해 담대하게 나아가는 교회가 되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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