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왕권을 높이라(06)_삶의 모든 영역을 주께 드리라 (골 3:22-24)

페이지 정보

작성일2026-10-22

본문

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왕권을 높이라(06)

삶의 모든 영역을 주께 드리라 (골 3:22-24)



그리스도인이란 사상이 변화된 사람

지난 주일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란 혈연이나 육정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부르셨을 때 그들과 하나님 나라 언약을 맺으셨는데, 그 언약의 대상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후손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 더 이상 혈통과 육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신약의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지 예수를 믿는 사람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되 그의 모든 것이 변화된 존재입니다. 그의 생각이 변화되고 마음의 뜻이 변화됩니다. 이렇게 생각과 마음의 뜻이 변화된 사람, 이것을 우리는 사상이 변화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마음의 뜻과 생각, 곧 사상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디로부터 시작됩니까? 사상의 변화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삶의 변화가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기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평생을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상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상이란 하나님 나라의 사상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 나라의 사상을 가지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왕 되심을 선포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 사상이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않느냐, 이것이 사람의 생애를 바꾸어 놓습니다. ㅡ하나님 나라 사상이 없으면 그는 작은 구원에 머뭅니다. 예수 믿고 복 받고 천국 간다는 수준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사상이 마음속에 들어가면 평생의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언약과 그 전수 — 하나님 나라 사상의 원형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이 바로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갈대아 우르 고향 땅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곳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어디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인도받아 가다 이른 곳이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 땅은 그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곳이었고, 그곳 사람들의 삶은 자기가 살던 지역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가나안 땅에서 100년을 살았습니다. 75세에 들어와 1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그는 가는 곳마다 단을 쌓아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을 마음에 품고 살았습니다. "너와 네 자손에게 이 땅을 주리라. 너와 네 자손을 복의 근원으로 삼아 만민이 복을 받게 하리라." 이 약속을 붙들고 살았으며, 이 약속을 아들 이삭에게 전수하였습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하나님을 만나 그 언약을 자신의 언약으로 갱신하였습니다. 이삭은 그 언약을 야곱에게 전수하였고, 야곱 역시 하나님을 만나 이 언약을 자신의 것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의 이 언약을 전수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경배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너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여 세계 만민이 복을 받게 하겠다"는 약속의 후반부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약속의 후반부는 신약 시대 복음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세계 만민이 복을 받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왕권과 복음의 사명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만민 위에 뛰어난 이름, 곧 통치의 권세를 가지시고 그 영광스러운 권세로 만민에게 나아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명령을 붙들고 우리는 복음을 들고 나아가며 세계 만민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는 일을 감당합니다. 온 세계 만민이 복을 받는 영광스러운 일이 드디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일은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어야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약 시대는 바로 이 복음의 영광을 선포하며 하나님 말씀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고, 그 일을 사명으로 삼아 헌신하는 시대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 나라의 사상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하나님 말씀의 통치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하여 만민 가운데 나아가 헌신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영역 주권 사상 — 카이퍼의 가르침

그리스도의 왕권을 높이라는 이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 사상을 가지고 살아가되, 이 세상의 풍조에 위축되거나 휩쓸려가서는 안 되며 오히려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 위에 서 있습니다. 이 사상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가르침을 전수한 인물이 아브라함 카이퍼입니다. 그는 영역 주권이라는 사상을 가르쳤습니다. 영역 주권이란, 국가, 교회, 가정, 학교 등 각각의 영역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고유한 권한과 법칙이 있어서, 국가는 국가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각자의 고유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영역들은 서로 협력하는 관계에 있지만, 어느 한 영역이 다른 영역을 침범하거나 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카이퍼는 국가 교회가 왕권의 정책과 명령으로 교회의 모든 일들을 통제하려 할 때 이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19세기에 두 차례에 걸쳐 국가 교회로부터 분리되어 나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왕권이 강화되어 교회를 통제하려 할 때, 그 통제를 거부하며 교회를 나온 것입니다. 카이퍼는 이것을 슬프지만 떠날 수밖에 없는 길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교회는 왕의 법과 정책으로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통치를 받아야 할 것은 교회만이 아닙니다. 국가도, 가정도, 학교도 하나님의 말씀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모든 공적 영역에서 종교적 색채를 부인하고 배제하려는 흐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불의한 재판장이 끊임없이 간청하는 과부의 청을 외면하지 못한 것처럼, 우리는 계속해서 공적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이 사회를 하나님의 의로 새롭게 하고자 하는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개인의 삶과 직업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분야

영역이 하나님의 법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사회의 중요한 단위들을 가리킨다면, 분야는 우리 개인이 나아가는 직업의 현장이나 문화적 현장을 가리킵니다. 그 모든 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해야 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직장이 단지 생계를 위한 것이냐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물론 그 일을 통해 생계를 영위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생계를 목적으로 직장 생활을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하나님 나라 사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맡겨진 일들을 감당하는 것, 그것이 직장이 되고, 영업 현장이 되고, 회사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실상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분야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삶에 대한 태도이며, 이 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세계관이며 사상입니다.


칼빈주의와 자본주의 정신 — 막스 베버의 통찰

20세기 초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저서에서 중요한 통찰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 자본주의가 가장 건전하게 발달한 두 나라로 영국과 네덜란드를 꼽았습니다. 그런데 이 두 나라에는 각각 비슷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영국에는 청교도 사상이 있었고, 네덜란드에는 개혁파 사상이 있었습니다. 이 둘은 같은 시대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교리와 실천의 문제를 씨름하면서 세워진 사상입니다.


이 사람들은 직업 활동을 하고 공장을 세워 이윤이 발생해도, 그 이윤을 사치와 향락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삶의 목적으로 삼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평소 복장도 검소하게 유지하면서, 벌어들인 돈을 공장을 확대하고 노동자들에게 이익을 돌리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이로써 자본주의가 건전하게 발달하였다는 것이 베버의 분석입니다. 이후 100년 동안 이 테제에 대한 많은 학문적 도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국과 네덜란드의 건전한 자본주의 발달에 칼빈주의 사상이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도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은 학문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칼빈주의의 긍정적 영향을 인정하기 싫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칼빈주의는 문명이다 — 카이퍼의 통찰

카이퍼의 『칼빈주의』 강연집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으나, 최근에 다시 읽으면서 이전에는 제대로 읽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카이퍼는 칼빈주의를 단순한 교파적 사상이 아니라 하나의 문명으로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문명처럼 칼빈주의 문명이 있었으며, 그 칼빈주의 문명이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 세계를 형성하였다는 것입니다. 문명이 되었다는 것은 일정한 지역과 시대를 주도하면서 인간의 생각과 삶을 완전히 바꾸는 체계를 이루었다는 의미입니다. 카이퍼는 그 엄청난 주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며, 그 칼빈주의 문명을 자기 시대에 다시 회복시키고자 하였습니다.


복음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교육 분야에서는 기독교 학교들이 이 나라의 교육을 주도하였습니다. 의료 분야에서는 기독교 병원들이 이 나라를 이끌었습니다. 정치 세계에서도 기독교인들이 대한민국을 세우고 이루어 나가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우리의 자녀들을 이 일을 감당할 사명자로 양육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와 그리스도의 왕권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도가 단지 주일학교 숫자가 늘어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 사상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마음에 품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자기 삶을 온전히 주께 드리는 사명자로 살 수 있도록 우리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이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도의 내용이 되어야 하고,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 분명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의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로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왕으로서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곳에 가서 죽으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내가 이룰 것이니 너희는 순종하여 가라"는 명령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변화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지금도 이 땅에 역사하시는 성령이 계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실 것이며, 왕 되신 그리스도의 영광이 이 땅에서 우리를 승리자로 만드실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